SEA – ICN

2년 2개월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그리웠던 관계와 공간은 내가 그렸던 것과 달랐다. 익숙한 모든 것들이 어색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나는 언젠가 서울로 돌아와 살게 될까, 아니면 이렇게 계속 드문드문 만나다가 잊혀져가게 될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영영 여기에 뿌리를 내리게 될 거라면,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만큼을 돌아가서 미국에서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먹어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릴 때라고 쉬웠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새 내게 가장 편한 공간은 고양이가 꼬리를 세워 나를 반기는 곳이다. 심심하고, 평화롭고, 초록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도시. 늘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던 나나는 사람 주변을 맴돌며 가까이 있고 싶어했다. 혼자 열흘 넘게 외롭고 심심했지.

늘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내 집이 아닌 부모님의 집이었다. 현실자각타이밍이 좀 늦었다.

 

또,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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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

3보 이상 승차 + 인도어 캣과 함께 하는 인도어 휴먼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니 몸이 무거워졌다. 일주일에 3번 리포머 위에 올라가려고 노력 중인데, 반려사람이 요새 로잉을 열심히 하는 게 자극이 되었다. 딴 것보다 구석에 모셔뒀던 리바운더의 재미를 알았다. 보기엔 쉬워보이는데 2분 넘어가면 배 땡기고 땀나고 힘들다. 한국에선 리바운더 쓰는 클래스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다른 유산소 운동보다 관절에 무리가 안 가서 좋다. 한국 들어가기 전 과연 정상 무게를 찾을 수 있을까… 아, 8월 말 / 9월 초 들어가려던 계획은 다시 밀려 10월 첫째 주, 둘째 주가 되었습니다. 반려사람 일이 바쁜데다 한국 너무 더워보여서 무서웠음.

  • 학교

첫 학기 좀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낮은 티어의 장학 대상이 되긴 했다. 이번 학기 등록금 30% 감면. Lambda나 디지털대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받은 대학 교육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피어가 한 데 모여있을 때 주고 받은 영향, 그 때 만난 관계가 과연 1년 등록금 천만원에 육박하는 가치가 있었던 걸까… 어쨌든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그리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사랑의 하나님”을 이야기 하던 채플, 랜더링 하다가 뻑하면 사망하시던 실습실 컴퓨터, 과제 제출 전날 말도 안되는 시간에 전화해서 귀찮게 해도 잠결에 대답해 주시던 선생님 목소리, 헬렌관 스파게티… 같은 걸 떠올리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사업자등록/개발

여기서 외주를 위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용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아직 세금 신고를 안 해봐서 이게 잘 한 결정인가 애매한데 설마하니 홈텍스보다 힘들겠어.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뭘 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전적인 일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십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만들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Lambda 끝내고 나서는 나는 프론트엔드가 더 취향이구나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데이터 분석할 때도 분석 자체보다 시각화가 좋았던 것 같고. 그나저나 아재들이 아무리 JavaScript 무시해도 뭔가가 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나나찡

반년을 같이 산 나나는 의사 표현이 확실해졌다. 싫은 거 싫다고 애애옹! 하고 이제 내 눈치도 안 본다. 길에서 살 때 어디서 맞고 다녔을까 안쓰러웠는데 막상 마당에 침입한 길고양이나 산책냥이들을 대하는 나나의 자세를 보니, 아아… 얘가 그동안 우릴 엄청 봐줬구나 깨달음이 왔다. 이건 완전 야수 또는 맹수의 모습. 발톱 깎을 때 그 정도로 끝난 건 정말 많이 협조적이었던 거였다. 여튼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한 건 참 잘 한 결정이었다. 다른 생명이 나를 우울에서 꺼내주었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나나찡.

오늘도 기승전 고양이.

근황

Lambda School – Computer Science Major

12월 코호트에 합격해서 수업을 듣고 있다. Lambda School은 Y 컴비네이터 출신으로, CS와 AI 코스를 오퍼한다. 엔지니어로 취업하기 전까지는 수업료 낼 일 없다는 데 혹했다.

스타트업으로선 좀 아쉽다. 실행력 엄청 좋은데, 제품은 없다. 모든 수업은 zoom으로, Q&A는 slack을 사용한다. 서부 시간 오전 8시 – 오후 5시까지 아침에 한 시간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zoom으로 수업을 하고, 페어/개인 프로그래밍 시키고, daily standup 하고. 소소한 장치들을 계속 넣었다 뺐다 하면서 수업 방식을 두고 실험을 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쉬운 점은

  • 내 경우 slack의 실시간성이 몰입을 방해한다. 정신이 없다.
  • 인강에 익숙한 한국 살암 잠깐 놓친 부분 잠시 돌려 보기도 해야하고, 1.5배속으로 볼 수도 있어야 하는데, 굳이 왜 오프라인 강의도 아닌데 실시간으로만 해야하는지 의문.
  • 자막 있는 강의에 익숙해 있다가 없이 보려니 순간 순간 못 알아 들을 때가 있다.
  • 교수자가 라이브 코딩하다 안 풀릴 때 삽질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우 답답.
  • 웹페이지 소개에는 코드 리뷰를 꼼꼼히 할 것 처럼 써놓았지만 막상 제출한 코드를 누군가 시간 내서 봐주는 것 같지 않다. TA가 looks good 외치고 끝.
  • 제일 힘든 점은 8시부터 시작하는 거. 저혈압 인간에게 오전 시간은 힘들다.

좋은 점은 일반 대학 커리큘럼과 비교하면 대학은 여러 과목의 진도를 한 학기/16주에 펼쳐놓지만, 여긴 소주제를 한 주에 끝내버리는 것. 실시간인 게 단점이자 또 장점이기도 한데, 8 to 5 책상 앞에 앉혀놓으니 뭐라도 하게 된다.

SDU – Computer Engineering 전공 3학년 편입

한국에 있었으면 방통대를 생각했을 텐데, 시험기간에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원격대학들을 알아봤다. 미국 대학 대비 가격이 워낙 훌륭했고, 그동안 여기 저기서 MOOC 수업들을 많이 들어봤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엔 원격 대학교가 이미 있구나 싶어 비교해 보고 싶기도 했다.

한 달 수업 들어본 것만으로 평가하기 좀 이르지만 기대보다 수업 내용이 좋다. SDU의 정돈된 커리큘럼과 Lambda의 약간 정신없는 활발함이 좀 섞이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세라 수업별 포럼 같은데서 서로 질문하고 답해주는 것 같은 적극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2주 동안의 윈도우를 주고 그 안에 한 주차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한꺼번에 진도를 빼버릴 수 없다. 물론 기말 다 되어서 몰아보기도 할 수 없다. 학부니까 총 6과목을 따라가려면 꼬박꼬박 매일 한 과목씩은 들어야 하고, 보통 3주마다 퀴즈나 과제가 있어서 전공으로만 채우니 꽤 빡빡하다. 3학기 안에 끝내는 게 목표.

다만 교수님들 동영상에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거 진심 어색하다. 이 바닥에서 넘나 보기 힘든 수트 차림… 수강 신청할 때 의도적으로 여자 교수님 과목을 찾아 넣어서 그래도 2과목은 여자 선생님인 거 좋다. (람다엔 한 명도 없다). 문과에 여대를 나와서, 학교마다 여자 교수님들이 이렇게 적은지, 더군다나 STEM 분야에 여자 교수님이 이렇게 찾기 힘든 존재인지 전혀 감이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STEM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의 2/3가 x파일의 스컬리를 롤모델로 삼아서 스컬리 이펙트라고도 한다는데,  미디어나 학교에서, 눈에 잘 띄는 롤모델의 존재란 너무 중요하다.

해외통신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해외통신원을 하게 되었다. 글값이 말도 안되게 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생각보다 한 달에 양 쪽에 한 개씩, 두 꼭지 글 쓰기도 쉽지 않다. 허구헌날 글을 쳐내고 마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기자들/ 다양한 포맷의 글쟁이들이 대단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둘 다 네이버 까페와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쓴다는 거다. 허허 너무나 말도 안되게 느껴지지만 나름 적응 중. 그래도 예전엔 공무원들 네이버 같은 외부 이메일 주소 쓰는 것도 많이 봤는데, id@korea.kr 로 통일한 듯 보여 말끔해 보였다.

초보 집사

집사의 길을 걷고 있다. 보스턴 출장가는 반려인을 따라가서 놀다 왔는데, boarding 맡겼다가 찾아왔더니 아주 서러움이 폭발했다. 잘 울지 않는 애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야옹 야옹 말을 하는데, 날 그런 데다 놓고서 어디 갔었냐고 하는 것 같다.

TV나 책 보다가 울고 있으면, 슬퍼하는 걸 안다. 무릎으로 와서 앉거나 내 살에 자기 살을 대고 앉는다. 함께 사는 건 이런 거라고, 서로 위로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는 고양이. 내가 얘한테도 위로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캔따개는 되고 있겠지.

 

 

고양이 나나

고양이를 입양했다. 1살 반 ~ 2살, 사람 나이로 치면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미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걸로 보인다니 아줌마라고 남편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 고양이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손을 무척 반기던 암컷 고양이.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를 더 선호하지만, 우리는 덩치도 있고 이제 귀여운 맛도 덜 한데다 배에는 채 아물지 못한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는 이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수술 자국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나중에 서류를 자세히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임신 중간에 발견되어 낙태와 중성화를 (당)했다고.

길고양이 번식을 억제한다고 중성화를 시키는 것도 참 사람 멋대로지만, 이미 있는 아기를 지우기까지 하는 건 몰랐다. 서류에는 임신 때문에 건강을 너무 상해서 그랬다고 써있다. 하지만 검색해보니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에서 길고양이가 임신 30일 전에 발견되면 임신을 중단시키고 중성화시키는 정책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처음 며칠은 힘도 없고 아파 보여 걱정이 많았다. 자꾸 헛구역질을 하던 날에는 깜짝 놀라 남편과 24시간 하는 동물병원 응급실에도 갔다. 보호소에서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는 조용하던 애가,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엄청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다시 버려지는 걸로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 거 아니라고, 너 아픈 거 같아서 병원가는 거라고 계속 말을 걸었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리가 없다.

이제 2주 지나니 수술 자국도 다 아물고, 잘 먹고, 계단도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다닌다. 집에 있는 책장이나 수납장은 칸칸 다 들어가보고, 부엌에 뭔가 냄새가 난다 싶으면 바로 점프한다. 새벽이면 밥 달라고 어김없이 침대 주변에서 기척을 내더니 어제부터는 아예 내 가슴께로 올라와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은근히 아프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보다 훨씬 자주,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 말은 배운 적 없는, 게다가 한국어는 처음 들어봤을 미국 고양이는 그 고백의 순간에 눈을 꿈뻑 거리기도 하고, 사람 손이나 무릎에 박치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은 뭐라는 거냐, 는 표정으로 엄청 크게 하품한다.

어지간하면 사람 있는 공간에 같이 있고 싶어하고, 사람이 먹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한다.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호기심도 많아졌지만 아직 정수리랑 콧잔등에 남아있는 흉터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언 놈이 이랬냐고 언니가 가서 다 혼내줄게 하고 싶다. 이렇게 순하고 사람 손 많이 탄 애가 어떻게 길에서 버텼는지.

고양이가 오래 살면 스무 살이라니 나나가 세상을 떠날 무렵이면 나와 남편은 거의 환갑 근처일 것이다. 그 날까지 계속, 매일 매일 여러 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고양이의 오후처럼 심심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미국행 외노자/유학생에게 추천

대학원 되어 가을 학기에 미국오는 후배와 메신저로 수다를 떨다가, 이런 대화에서 반복해서 추천하는 제품/서비스 리스트가 있는 듯 하여 간만에 블로그를 쓴다. 앞으로도 생각나면 또 업데이트 할 예정. 누군가 물어보면 이 글 링크를 던지면 되도록 (+ amazon associates 테스트 겸).

 미국판 온수매트


미국 오고 첫 겨울은 참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분명히 서울보다 날씨 따뜻하고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잘 없는데, 대체 왜?? 보일러 틀면 바닥 따땃해지던 느낌과는 다르게 공기를 데워서 난방을 하니 따뜻함의 장르가 다르거니와 피부는 점점 사막이 되어갔다.

잘 때라도 바닥 난방이 되었으면 했다. 남편이 원래 쓰던 온수 매트가 망가져 버려서 검색을 엄청 했다. 한국 브랜드들도 아마존에서 제품을 팔던데, 따로 220v 트렌지스터 놓고 쓰는 게 싫어서 고민하다가 미국판(?)을 샀다. 회사 이름으로 링크드인을 뒤져보니 직원 구성 중에 한국계가 유난히 많은 느낌이던데, 한국 제품들 써보고 클론 개발한 걸까 궁금.

타로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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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광고 보고 들어 갔다가 결제를 안 하니까 심지어 전화까지 걸어서 뭐가 문제여서 결제를 안 하냐고까지 물었던 온라인 반찬 가게. 전화를 못 받았는데 음성 메시지로 남겨 놓은 게 약간 충격이었다. 창업자들이 다 인도계인 게 영 믿음이 안 갔었다. 한국 반찬인데 묘하게 향신료 맛이 많이 난다거나…

어쨌든 스타트업에 대한 과한 편애가 있는 나는, 그 과격한 접근(대뜸 전화해서 물어보자!)을 좋게 보고 한 번 속는 셈 치고 주문을 했다. 포장을 버리는 게 좀 귀찮을 수는 있는데, 주변에 한인 마트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어도 반찬 맛이 맘에 안 드신다면 시도해 보시라고 추천. 일주일에 한 번 옵션을 골라서 구독하는 형태고, 만약 이번 주는 건너뛰고 싶다면 스킵 버튼 누르면 된다.

Safari Books Online / Lynda.com

학교나 회사 때문에 오는데 이미 이 정도의 DB는 구매해서 사내/교내 도서관에서 제공하면 이런 거 필요 없겠지만, 꽤 큰 테크 회사들도 이런 건 지원 안 하는 경우도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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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킹 카운티 도서관에는 사파리북스가 없는데, 시애틀 도서관에는 있어서 카드를 둘 다 만들었다. 사는 지역 공공 도서관마다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 린다닷컴은 DB에 갖고 있는 듯 하다.

사파리북스 원래 월 이용료는 월 39불. 린다닷컴은 링크드인에서 제공하는 유료 비디오 강의 서비스고 기본 프라이싱은 월 20불.  개발/디자인 위주의 러닝 패스가 많지만 꼭 그런 쪽 아니어도 일하며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스킬을 커버한다.  개인적으로 링크드인의 사내 코치인 Fred Kofman의 강의를 추천.

어렸을 때,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다듬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해 왔다.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꾸미려 했던,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이기도 했던 사람. 그리고 요새 나는 그 장면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오면서 이력에서 가장 긴 시간을 출근과 퇴근을 않고 살아보니 숨이 안 쉬어 지더라. 참 사람이란 간사하다. 일찍 눈 떠서 추운 날씨에 나서야 할 땐 쉬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 그 반복이 그립다. 일어나 씻고, 옷을 고르고, 자외선차단제나 엄청난 스피드로 쳐발쳐발 한 후 아 또 늦었다 우다다다 아파트 현관을 열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공격적으로 누르던 그 반복.

그건 그냥 스스로를 위해서 했던 행동일 수도 있겠구나. 누구 보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고 보듬으려고 하는 행동.

엄마는 결혼한 후 일을 그만 두었었다. 요새 같아도 눈치 보였을 사내 커플이었던데다, 그 때는 결혼하면인가 임신하면인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각서 같은 걸 ‘여’직원에게 따로 받았다고 했으니까. 엄마 처녀 때 입었던 옷인데, 하며 낡은 옷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던 그 감정을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편한 옷 말고 갖춰 입어야 하는 옷(말하자면 전투를 위한 옷)은, 집에 있을 땐 골라 입게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미래를 그리며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디 가서 직업을 물을 때 주부라고 답해야 하는 상황도 아예 그린 적이 없었다. 지난 주 병원에서 회사를 물어서 하우스 와이프라고 답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는데, 나는 왜 그 대답이 부끄러웠을까. 간호사가 그거 세상 터프한 직업이라고 말해주니 더욱 귀끝까지 열감이 느껴졌다.

*

요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스타트업의 영어 회화 서비스를 썼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멀쩡하게 좋은 학교 인문대를 나와 뉴욕에 살고, 외할머니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했다. 사고 싶은 책이 많은데 돈이 없단다. 너는 그래도 경력과 기술이 있잖냐고, 내가 지금부터 기술을 배워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보다, 네가 언어가 더 늘어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어디나 문송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았다. 학부에선 문과 전공을 한 남편과 앉아 왜 문돌이들이 SQL 따위를 어려워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배우려 안 할까, 어떨 땐 엑셀 노가다질보다 나을텐데 얘기하다, 아예 노출된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없으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겠냐고 말했다.

*

일하고 그 일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밥을 사먹는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여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렇게 온 지구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STEM 전공 아닌 사람은 밥벌기 점점 어려워지면 우린 뭘 해야할까. 여기나 한국이나 젠더 의식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데는 좋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한국은 사실 거꾸로 돌릴 것도 없이 원래 그 자리였지만서도.

 

 

2016/2017

해가 바뀐지 며칠 지났다. 16년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 결혼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한국 들어가 혼인성사는 다시 할 계획인데, 허전해 할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특히 어째 엄마보단 아빠가 많이 쓸쓸해 하는 것 같다.

결혼식이란 건 준비하기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는데, 작고 조용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 집에서 가까웠던 드레스샵에 웨딩드레스를 주문했고, 시애틀 꽃시장에서 전날 꽃을 사다가 부케랑 부토니에를 만들었다. 장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반지는 삼청동 누니주얼리에서 맞췄고, 한 달 정도 지나야 완성된대서 출장오는 후배 편에 받았다. 포토그래퍼가 젤 막막했는데, 한국의 숨고같은 사이트인 Thumbtack을 통해 사진으로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이를 찾았고, 리뷰가 꽤 좋더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현진이가 와줄 수 있어서 고마웠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좀 불안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랬을까 싶다. 한 시간 예식보다 그 이후 같이 살아내는 과정이 중요할텐데, 그 이벤트 자체에 너무 진을 빼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작게 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것 많고 힘들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면서도 남들과 좀 뭘 다르게 하고 싶을 때, 걱정하지 말고 내 하고픈 대로 할테다. 그리고 멀리서도 선물이랑 축의 보내주신 분들을 보며 나는 이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고 있었나 반성했다.

 

  • 달팽이 집

엄마아빠 집에서 짐을 홀랑 빼서 이사를 했는데, 미리 정리한다고 많이 버렸는데도 받고 보니 또 버릴 게 있었다. 심지어 아직도(!) 새로 버릴 게 나온다.

미리 다 덜어냈으면 이사 비용이 덜 들었을텐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더 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긴 하다.

미니멀리스트를 다룬 책이 아무리 유행이래도 내가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정기적으로 짐을 덜어내는 걸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 1 & 0

신용도 1, 부채 0인 상태가 된 게 2016년 봄이다. 끝이 날까 했는데 끝났다. 막상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안 믿기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다. 지나고 나면 배운 게 많았는데, 들고 있을 땐 무거웠다. 살면서 다시 달달한 일도 쓰고 떫은 일도 오겠지. 다 지나가는 걸 경험했으니 그 때는 더 덤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건강


여름에 대상포진이 재발했었다. 어릴 때랑은 다르게 무리하면 안되고 제 때 안 자고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 탈난다. 가끔 그 밤샘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내 체력의 한계를 알고 조심할 점들을 찾아 스스로를 케어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여기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다시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다.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칭찬이 후해서 기분이 좋은데 움직일 때 디테일을 안 잡아주니 재미가 없다. ClassPass라도 잘 써보는 걸로.

필라테스 인스트럭터 수업 들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서울 들어가서 시험을 볼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싶다. 이 목표는 미완인채로 2017년으로 넘어왔다.

 

올해는 집 사서 이사하고 이직 성공만 해도 훌륭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업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지금의 나에겐 없는 것 같다. 이 평범하고 안온한 상태가 참 좋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 놀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늘 그렇듯 좀, 불안해하며 새해 시작.

눈높은 손녀가 할미에게

네 눈이 아무리 높아봐야 눈썹 밑에 있다던 우리 할머니가 오늘은 이런 말을 했다.

배운 니가 한 번 말해봐라, 이 정도면 안락사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온 병원이 노인네 천지야, 이렇게 죽을만 하면 살려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그러나 이내, 내 친구들 중에 외손주 못 본 건 당신밖에 없다고 넌 뭐하고 있냐며 분발하라고 구박이시다.

요새 그는 자꾸 주기도문을 한 문장씩 빼고 외우는데, 이거 깜빡했다고 용서 안해주는 하느님이면 그거 사람이지 하느님 아니란다. 내가 아는데 그렇게 속좁은 이 아니라고 해서 우릴 웃기고.

세상 누구에게도 함부로 기대려 하지 않았던,
아니 기대고 싶어도 기댈 구석이 없었던 당신에게도
이젠 숟가락 드는 일마저 힘이 부치는 날이 왔다.

노인이 되고도 늘 쨍하던 할미는, 점점 빛나던 특징들을 잃어가고 있다. 기억은 바래고 눈물은 흔해진다. 꼿꼿하게 내가 알아서 간다며 바래다 주는 것도 거부하던 노인네가 빵조각을 들고 새끼들 먹이고 싶어도 그저 부족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웅크려 울고 있었다.

고생스런 삶에도 늘 고우셨던 할머니에게 맞는, 더 우아한 마지막을 딱히 찾아드릴 수 없으니 화가 난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슬슬 고장이 나다가 이내 유효기간이 다하게 되는 일은 참 쓸쓸하여라.

Linkedin 다시 쓰는 이야기

한동안 링크드인은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 신청 들어오는 계정은 스팸이거나 헤드헌터만 있었고, 서비스는 죽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메일로 누구 자리 옮겼다는 소식이나 들어오면 링크 클릭해서 한 번 보고 바로 이탈하는 종류의 서비스였다. 모바일 경험은 쓰레기 같았고, 새로운 시도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창업자가 여기 저기서 강의한 영상은 재밌었지만, 창업자가 손 놨는데 잘 될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종류의 시그널이기도 했다.

최근 주가가 거의 반토막 났다. 사람들 뜨지 않게 하려고 제프 위너는 받은 $14M 그랜트를 직원들에게 나눠준 모양이었다. 경영자가 일종의 셀러브리티인 시대에 난 제프 위너를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하는데(아직도 인터뷰 발 번역 한 건 꾸준히 방문자가 있는 에버그린 포스트..), 밖에서 보기엔 매우 차분해 보이고 생각이 깊어보이고 인터뷰들도 어쩜, 좋았걸랑. 아, 주가가 이리 빠지면 쫄려서 사람부터 자른다는 뉴스가 나올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We are the same company we were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I’m the same CEO I was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You’re the same team you were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And most importantly, we have the same mission, vision, and sense of purpose in terms of our ability to create economic opportunity. None of that has changed. It hasn’t changed one iota.

전사 미팅에서 했다는 스피치가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취해야 할 자세의 교과서 같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의 회사에서 벌어졌다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며, 이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직원들을 다그쳤겠지.

그리고 좀 더 관심갖고 보니, 놀지는 않았더라. 앱이 조금씩 나아지더라. 진지한 “일”에 관련된 이슈들은 페이스북 피드가 아니라 링크드인 피드에서 발견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진지하게 쓴 좋은 글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쨌든 생전 처음으로 프리미엄 계정 써보겠냐고 오는 메시지에 yes 해보았다. 경쟁자도 놀지 않으니(특히 FB at Work) 이런 느낌이 1년 지나 주가에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요새 거의 하루 한 번은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다.

 

같은 이야기, 다른 시각화 – 승자독식의 20년

bank-consolidation-1050x679Source: http://www.visualcapitalist.com/the-banking-oligopoly-in-one-chart/

링크드인 타임라인에서 처음 보았다. 이 차트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Source: http://www.americanbanker.com/news/law-regulation/are-big-banks-necessary-1079790-1.html

오마나 한 15년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 겨…

어제 동호 말하길, 요새 산업의 사이즈는 충분하나 아직 몇 개의 강자가 시장을 과점하지 못한 쪽에 관심이 간다 했다. 과연 그러합니다. 그런 판에서 힘 조절하면서 2008년 같은 해가 오길 기다려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