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다듬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해 왔다.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꾸미려 했던,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이기도 했던 사람. 그리고 요새 나는 그 장면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오면서 이력에서 가장 긴 시간을 출근과 퇴근을 않고 살아보니 숨이 안 쉬어 지더라. 참 사람이란 간사하다. 일찍 눈 떠서 추운 날씨에 나서야 할 땐 쉬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 그 반복이 그립다. 일어나 씻고, 옷을 고르고, 자외선차단제나 엄청난 스피드로 쳐발쳐발 한 후 아 또 늦었다 우다다다 아파트 현관을 열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공격적으로 누르던 그 반복.

그건 그냥 스스로를 위해서 했던 행동일 수도 있겠구나. 누구 보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고 보듬으려고 하는 행동.

엄마는 결혼한 후 일을 그만 두었었다. 요새 같아도 눈치 보였을 사내 커플이었던데다, 그 때는 결혼하면인가 임신하면인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각서 같은 걸 ‘여’직원에게 따로 받았다고 했으니까. 엄마 처녀 때 입었던 옷인데, 하며 낡은 옷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던 그 감정을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편한 옷 말고 갖춰 입어야 하는 옷(말하자면 전투를 위한 옷)은, 집에 있을 땐 골라 입게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미래를 그리며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디 가서 직업을 물을 때 주부라고 답해야 하는 상황도 아예 그린 적이 없었다. 지난 주 병원에서 회사를 물어서 하우스 와이프라고 답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는데, 나는 왜 그 대답이 부끄러웠을까. 간호사가 그거 세상 터프한 직업이라고 말해주니 더욱 귀끝까지 열감이 느껴졌다.

*

요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스타트업의 영어 회화 서비스를 썼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멀쩡하게 좋은 학교 인문대를 나와 뉴욕에 살고, 외할머니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했다. 사고 싶은 책이 많은데 돈이 없단다. 너는 그래도 경력과 기술이 있잖냐고, 내가 지금부터 기술을 배워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보다, 네가 언어가 더 늘어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어디나 문송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았다. 학부에선 문과 전공을 한 남편과 앉아 왜 문돌이들이 SQL 따위를 어려워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배우려 안 할까, 어떨 땐 엑셀 노가다질보다 나을텐데 얘기하다, 아예 노출된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없으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겠냐고 말했다.

*

일하고 그 일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밥을 사먹는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여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렇게 온 지구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STEM 전공 아닌 사람은 밥벌기 점점 어려워지면 우린 뭘 해야할까. 여기나 한국이나 젠더 의식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데는 좋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한국은 사실 거꾸로 돌릴 것도 없이 원래 그 자리였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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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해가 바뀐지 며칠 지났다. 16년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 결혼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한국 들어가 혼인성사는 다시 할 계획인데, 허전해 할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특히 어째 엄마보단 아빠가 많이 쓸쓸해 하는 것 같다.

결혼식이란 건 준비하기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는데, 작고 조용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 집에서 가까웠던 드레스샵에 웨딩드레스를 주문했고, 시애틀 꽃시장에서 전날 꽃을 사다가 부케랑 부토니에를 만들었다. 장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반지는 삼청동 누니주얼리에서 맞췄고, 한 달 정도 지나야 완성된대서 출장오는 후배 편에 받았다. 포토그래퍼가 젤 막막했는데, 한국의 숨고같은 사이트인 Thumbtack을 통해 사진으로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이를 찾았고, 리뷰가 꽤 좋더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현진이가 와줄 수 있어서 고마웠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좀 불안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랬을까 싶다. 한 시간 예식보다 그 이후 같이 살아내는 과정이 중요할텐데, 그 이벤트 자체에 너무 진을 빼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작게 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것 많고 힘들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면서도 남들과 좀 뭘 다르게 하고 싶을 때, 걱정하지 말고 내 하고픈 대로 할테다. 그리고 멀리서도 선물이랑 축의 보내주신 분들을 보며 나는 이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고 있었나 반성했다.

 

  • 달팽이 집

엄마아빠 집에서 짐을 홀랑 빼서 이사를 했는데, 미리 정리한다고 많이 버렸는데도 받고 보니 또 버릴 게 있었다. 심지어 아직도(!) 새로 버릴 게 나온다.

미리 다 덜어냈으면 이사 비용이 덜 들었을텐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더 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긴 하다.

미니멀리스트를 다룬 책이 아무리 유행이래도 내가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정기적으로 짐을 덜어내는 걸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 1 & 0

신용도 1, 부채 0인 상태가 된 게 2016년 봄이다. 끝이 날까 했는데 끝났다. 막상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안 믿기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다. 지나고 나면 배운 게 많았는데, 들고 있을 땐 무거웠다. 살면서 다시 달달한 일도 쓰고 떫은 일도 오겠지. 다 지나가는 걸 경험했으니 그 때는 더 덤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건강


여름에 대상포진이 재발했었다. 어릴 때랑은 다르게 무리하면 안되고 제 때 안 자고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 탈난다. 가끔 그 밤샘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내 체력의 한계를 알고 조심할 점들을 찾아 스스로를 케어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여기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다시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다.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칭찬이 후해서 기분이 좋은데 움직일 때 디테일을 안 잡아주니 재미가 없다. ClassPass라도 잘 써보는 걸로.

필라테스 인스트럭터 수업 들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서울 들어가서 시험을 볼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싶다. 이 목표는 미완인채로 2017년으로 넘어왔다.

 

올해는 집 사서 이사하고 이직 성공만 해도 훌륭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업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지금의 나에겐 없는 것 같다. 이 평범하고 안온한 상태가 참 좋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 놀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늘 그렇듯 좀, 불안해하며 새해 시작.

눈높은 손녀가 할미에게

네 눈이 아무리 높아봐야 눈썹 밑에 있다던 우리 할머니가 오늘은 이런 말을 했다.

배운 니가 한 번 말해봐라, 이 정도면 안락사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온 병원이 노인네 천지야, 이렇게 죽을만 하면 살려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그러나 이내, 내 친구들 중에 외손주 못 본 건 당신밖에 없다고 넌 뭐하고 있냐며 분발하라고 구박이시다.

요새 그는 자꾸 주기도문을 한 문장씩 빼고 외우는데, 이거 깜빡했다고 용서 안해주는 하느님이면 그거 사람이지 하느님 아니란다. 내가 아는데 그렇게 속좁은 이 아니라고 해서 우릴 웃기고.

세상 누구에게도 함부로 기대려 하지 않았던,
아니 기대고 싶어도 기댈 구석이 없었던 당신에게도
이젠 숟가락 드는 일마저 힘이 부치는 날이 왔다.

노인이 되고도 늘 쨍하던 할미는, 점점 빛나던 특징들을 잃어가고 있다. 기억은 바래고 눈물은 흔해진다. 꼿꼿하게 내가 알아서 간다며 바래다 주는 것도 거부하던 노인네가 빵조각을 들고 새끼들 먹이고 싶어도 그저 부족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웅크려 울고 있었다.

고생스런 삶에도 늘 고우셨던 할머니에게 맞는, 더 우아한 마지막을 딱히 찾아드릴 수 없으니 화가 난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슬슬 고장이 나다가 이내 유효기간이 다하게 되는 일은 참 쓸쓸하여라.

Linkedin 다시 쓰는 이야기

한동안 링크드인은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 신청 들어오는 계정은 스팸이거나 헤드헌터만 있었고, 서비스는 죽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메일로 누구 자리 옮겼다는 소식이나 들어오면 링크 클릭해서 한 번 보고 바로 이탈하는 종류의 서비스였다. 모바일 경험은 쓰레기 같았고, 새로운 시도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창업자가 여기 저기서 강의한 영상은 재밌었지만, 창업자가 손 놨는데 잘 될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종류의 시그널이기도 했다.

최근 주가가 거의 반토막 났다. 사람들 뜨지 않게 하려고 제프 위너는 받은 $14M 그랜트를 직원들에게 나눠준 모양이었다. 경영자가 일종의 셀러브리티인 시대에 난 제프 위너를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하는데(아직도 인터뷰 발 번역 한 건 꾸준히 방문자가 있는 에버그린 포스트..), 밖에서 보기엔 매우 차분해 보이고 생각이 깊어보이고 인터뷰들도 어쩜, 좋았걸랑. 아, 주가가 이리 빠지면 쫄려서 사람부터 자른다는 뉴스가 나올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We are the same company we were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I’m the same CEO I was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You’re the same team you were the day before our earnings announcement. And most importantly, we have the same mission, vision, and sense of purpose in terms of our ability to create economic opportunity. None of that has changed. It hasn’t changed one iota.

전사 미팅에서 했다는 스피치가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취해야 할 자세의 교과서 같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의 회사에서 벌어졌다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며, 이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직원들을 다그쳤겠지.

그리고 좀 더 관심갖고 보니, 놀지는 않았더라. 앱이 조금씩 나아지더라. 진지한 “일”에 관련된 이슈들은 페이스북 피드가 아니라 링크드인 피드에서 발견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진지하게 쓴 좋은 글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쨌든 생전 처음으로 프리미엄 계정 써보겠냐고 오는 메시지에 yes 해보았다. 경쟁자도 놀지 않으니(특히 FB at Work) 이런 느낌이 1년 지나 주가에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요새 거의 하루 한 번은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다.

 

같은 이야기, 다른 시각화 – 승자독식의 20년

bank-consolidation-1050x679Source: http://www.visualcapitalist.com/the-banking-oligopoly-in-one-chart/

링크드인 타임라인에서 처음 보았다. 이 차트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Source: http://www.americanbanker.com/news/law-regulation/are-big-banks-necessary-1079790-1.html

오마나 한 15년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 겨…

어제 동호 말하길, 요새 산업의 사이즈는 충분하나 아직 몇 개의 강자가 시장을 과점하지 못한 쪽에 관심이 간다 했다. 과연 그러합니다. 그런 판에서 힘 조절하면서 2008년 같은 해가 오길 기다려야겠지요.

조이와 함께 본 조이

지인이 아닌 분들이 이 글을 보실 수도 있으니 소개부터 하면 나는 작년 여름까지 조이코퍼레이션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경력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페이스북에서 영화 <조이>의 예고편 영상을 발견했다. 처음 한 생각은,

어쩔, 진짜 SEO 망했구나

애초부터 SEO 따위 포기한 이름이었지만, 심지어 창업 스토리 영화가 나오면 어떡하란 말이냐. 단체관람하자고 회사 그룹에 올렸고, 시사회 티켓으로 야근자가 아닌 이들이 같이 봤다. 스펠은 다르지만 조이라는 발음이 들릴 때마다 내 얘기인 것처럼 몰입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창업 이야기다.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꽤 각색됬지만) 실화다.

그냥 감상 몇 줄 적자면

  • 내가 불편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내가 피부로 느꼈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게 정답이다.
  • 저 시대와 비교하면 요즈음 우리가 이야기하는 창업은 참 쉬워졌다. 자본 시장의 지원 면에서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채널 면에서나.
  • 지금은 지루+고루해졌지만, 홈쇼핑 방송이 지금의 킥스터터나 인디고고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요샌 그 시절처럼 홈쇼핑을 통해서만 살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실제 인물의 이름도 조이였단다.

위키피디아 링크. https://en.m.wikipedia.org/wiki/Joy_Mangano

어디까지가 실화인지가 궁금하면 아래 링크.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아직 보지 마시고. 맨 아래 동영상 중 가장 위에 있는 대걸레 파는 인포머셜을 영화랑 비교해보면 재밌다.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joy/

알고보니 나도 그녀가 만든 제품의 은혜를 입었는데, 흘러내리지 않는 “허거블 행어”의 발명가였다!! 아마도 글로벌로는 특허 방어를 잘 못 했던 것 같다. 한샘이나 중국제 제품이 흐르고 넘치니까. 처음엔 허거블 행어를 샀고 후에 더 싸게 나온 카피 제품을 산 기억이 있다. 어쨌든 이 옷걸이 없었으면 옷장 속 공간이 지금보다 더더욱 부족했겠지. 고마워요 조이.

작년에 많이들 보셨을 <인턴>보다 창업가에게 많은 걸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는 영화다. 특히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내 주변에 둬야 할 사람과 끊어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이신 분들께도.

외로운 자리

비즈니스 사이즈에 관계없이 대장 노릇 하는 건 외롭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혼자 좋은 방에 앉아있는 대표님은 외로워 보였다. 눈치보고 있으면 밥 같이 먹을 사람 없는 날인 각이 느껴졌다. (아무도 그와 놀아주지 않았다!) 상태가 심해보인다 싶으면 비서 언니에게 물은 후, 아무 것도 모르는 여직원 얼굴을 하고 방문 앞에 기어가 대표님 맛있는 거 사주세요 배고파요 징징징을 시전했다. 스물 몇 살의 나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밥을 혼자 먹을 수 밖에 없어 도시락 따위를 사다달라 부탁하는 장면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직 한 줌, 열 명 될까 한 스타트업의 대표도 외롭다. 모두와 1:1을 하고, 일이 되게 하고, 속도가 나게 하고, 그리고 가능한 사람들 마음도 살피려 애쓴다. 객관적으로 다른 팀이 어렵게 푸는 이슈를 그의 개인적 능력으로 쉽게 푼 편이지만, 멤버들은 그걸 잘 모른다. 하루 종일 한 명 한 명의 문제를 듣고 나서는, 제 문제는 누가 들어주냐고 외치고 싶다고 했다.

대장도 아니었음에도, 나 역시 마음에 바람이 자주 불었었다. 어느 회사의 대리, 과장, 부장 친구들과 어울려 회사 욕, 상사 욕하는 걸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성과를 내고 네 밥값을 하던가, 상사가 영 거슬려서 일이 안되면 수단과 방법을 다해 그 인간을 치워버리던가, 아니면 나가던가. 욕하고 운다고 뭐가 해결되니. 나는 그 시절 직장인의 평범한 마음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이보다 잘 하실 수 있나요 묻고 싶은 그도, 출근하기 전 울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가면을 쓴다고 했다. 엄청난 감정의 업다운이 있더라도 잘 눌러담은 후 세상에서 가장 에너제틱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오피스로 간다. 사적으로는 그 어려움이 마음 아프고, 공적으로서는 그 절제가 존경스럽다.

회사가 작아도 커도, 이끄는 사람은 외롭게 되어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맑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를 기도해본다.

Posted in biz

Willingness to recommend

영어 수업할 때 쓰는 교재여서 폴 그레이엄의 교과서 같은 글을 다시 읽었다. 시간이 지나니 또 다른 느낌으로. 전화 영어를 2007년부터 썼던 스피쿠스에서 링글로 바꿨는데, 주변에 열심히 추천 중. 단 아직 좀 불안정한 면이 있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나 테크 인더스트리 사람들에게만. user  id가 아직 300번 대인 걸 보니 몹시 초기인데, 저 폴 그레이엄의 말을 정말 온 맘을 다해 실천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사용자 피드백이 들어가서 반영되는 게 눈에 너무 잘 보인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초기 단계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용자와 시장을 향해 귀를 열고 있기가, 말은 쉽지 어렵다. 당장 한 줌 잡은 고객은 작아 보이기만 하고 겉멋 들기는 얼마나 쉬운지.   

다른 데서 벌어졌으면 진상 부리며 날 뛰었을 일도 그냥 아이고, 애쓰는구나,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정말 이 문제 풀고 싶어 하는구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연결되기 힘든 양면 시장을 연결해주는 데서 가치가 발생하는 사업 모델이 많은데, 최근 한 반 년 사이 나온 양면 시장을 연결하려는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그냥 최고인 것 같다. MBA나 전략 컨설팅펌 출신 창업자여도 다 같은 거 아니구나, 농으로라도 함부로 앞에 마이너스 붙이면 안되겠다 생각했다.

이제 한국에도 폴 아저씨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긴지 글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는 창업가 커뮤니티가 많이 커진 듯 느껴진다. 하지만 저 스테이지를 지나 정말 ‘Do things that do scale’을 고민해야 할 때 참고할 아티클이나, 찾아가 물어볼 사람이나, 함께 고민해 줄 투자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보게 된 Blitzscaling 동영상. 스탠포드 한 학기 강의 녹화본이 다 올라와 있다. 뭐 이런 분들이 학교까지 와서 무릎 늘어난 청바지를 입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배운 거라고 떠먹여주고 있지. 여기 앉아서 저 내용을 다 볼 수 있는 게 살짝 실감이 안 난다.

땅의 기운을 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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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비나더‬가 한국에 정식 런치할 예정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까지 프리 쉬핑이 되는 걸로 나와 이걸 어쩌나 싶었더니 결국 그 가격이 거의 정확히 한국 가격이다. 요샌 직구 다 고려해서 프라이싱해야하니 쉽지 않겠다.

공홈은 내가 본 주얼리 쇼핑몰 중에 젤 잘 만든 것 같은데, 여러 아이템을 골라 가상으로 레이어드해볼 수 있게 되어 있고, 반지를 온라인으로 쇼핑할 때 가장 큰 허들인 사이즈는 프린트해서 기존 반지를 대보고 가늠할 수 있게 해놨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지. 잘되는 브랜드는 서로 닮았고, 안되는 브랜드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안되는 것 같다.

신세계에서 팝업스토어 하고 있다. 본점 신관 1층 5월 22~28일, 강남점 1층 6월 1~11일. 아이고 사업 아이템 바뀌고 나서 제일 힘든 점 중 하나는, 쇼핑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다.

 

2.

현대차랑 미팅인데 외제차 타고 가느니 택시타고 가야하는 것처럼, 패션 브랜드와 미팅이 있으면 그 브랜드의 아이템, 가능한 이번 시즌에 나온 걸로 걸치고 가는 게 좋다. 정말 한 브랜드에서 그동안 누적으로 내놓은 아이들이 수만가지일텐데, 매의 눈으로 알아보고 꼭 한 마디 한다. 저희 무슨 라인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그냥 애정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선배는 그게 “예의”라고까지 말한다. 헉 예의는 좀 과한 표현 아니유? 높은 사람들일 수록 스캐닝하는 속도와 깊이가 장난이 아니고, 어느 중요한 자리에 잘못 입고 가면 한 계절 내내 뒤에서 씹히는 수가 있다고 했다. 아니 외모로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 하긴, 이 동네 업의 본질이 딱 그건데 당연한 거지.

 

3.

레스토랑을 여러 개 갖고 있고, 건축과 부동산 개발을 전공한 분에게 물었다. 레스토랑을 새로 내실 때 제일 먼저 뭘 보세요? 모 브랜드가 이렇다 할 출점 전략이 없이 주먹구구식이라 하여 요 며칠 고민하다가 한 질문이었다. 내 주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스타벅스의 루빈팰드와 젤 비슷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니까네.

땅의 기운을 보지.

뭔 소리야 이게. 아저씨 지금 고등교육 받고 유학갔다와서 가방 끈 몹시 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말해서 그렇지 주변의 이미지를 떠올려. 예를 들면 도산공원 근처는 밝고 환하고 햇빛이 비치는 느낌인데, 이태원은 좀 퇴폐적인 느낌이어서 도산공원을 골랐어, 뭐 이런 식이었다. 오잉 저는 도산공원은 좀 늙은 느낌이고 이태원이 더 밝은 느낌인디요. 그러게 그건 좀 주관이 개입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이미지가 중요해. 어짜피 여기 오픈 전엔 상권 다 죽어서 길 앞에 지나다니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어.

데이터 안 보고 감에만 의지하는 결정도 위험한데, 감없이 데이터만 들고 하는 결정도 허술하다. 인생 모든 것은 밸런스.

옛날 생각 많이 하면 늙는 거라던데

– 2008년 M본부에서 비즈스파크 런치할 때는 startup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며 그냥 한글로 스타트업이라고 쓸까 벤처기업이라고 쓸까 초기기업으로 할까 고민했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일간지에서도 쓰고 있다. 국어야 미안해.

– 그 해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몇 백개 테크 회사들에게, 매일 한 통씩만 걸면 돼, 하고 다 콜드콜을 걸었다. 주말엔 쉬어야 하니까 가끔은 두 통 걸지 뭐. 바보같이 일한다고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TM은 벤더 쓰라며. 그 땐 겨우 백개 단위였는데, 요샌 연 한 2천개는 생기지 않을랑가.

– 포트폴리오사들에게 비즈스파크 소개해달라며 처음 만난 게 본이었다. 테헤란로 어드멘가의 스벅이었던 듯. M본부가 뭐하러 이런 걸 하냐고 단속용 DB쌓는 거 아니냐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시던 강이사님 표정이 기억난다.

– 블루홀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규모에서 쓰기엔 훨씬 많은 직원들이 라이센스를 써야해서, 여긴 해줘도 괜찮다고 본사 담당 설득하느라 진 뺐었다. 그거 명수 제한 풀어줬다 영업 쪽에서 엄청 다굴 당했던 기억도 나고

– 테크 인더스트리에서 ‘조직’의 초기를 케어하는 게 비즈스파크였으면, ‘사람’의 초기를 케어하고 육성하는 건 드림스파크랑 이매진컵 등등 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이매진컵 >> 삼성멤버십 >> 삼전의 테크트리를 탔다. 가끔 나오는 창업 건은 아주 예외.

옛날 미투를 떠올리게 하는 서비스, 어라운드를 만든 신상이를 보며 정말 사람도 기업도 크는구나, 사람과 기업의 초기단계를 케어해야 생태계가 풍부해지는 건 맞는 방향같다 회상해본다.

그 때도 M본부 사람들은 영어공부를 해야하는데, EBS 영어지문을 외우고 있는 바보짓을 했다. 그 와중에도 그러나 바보짓이라규 괴로워하느니 지문을 잘 외우면 영어가 늘기도 했다며…

– 신상이에게 나름 오랜 시간, 관찰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1인 가구로 가득한 도시는 외롭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아직 신이 났고 힘찼다. 몇 년 더 해보면 그도 다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지.

– 나는 내가 먼저 일을 벌린 후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력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난 그 불안의 무게를 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 결론은 딱히 없다. 그 많던 몇 백개의 회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단속 나오는 거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이 많았는데, 3년을 채우고 졸업한 곳들이 몇 퍼센트나 되려나. 3년 살아남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하면 엄청 싸했었다.

살아남아 다시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