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드 퐁파두르

boucher97
– Portrait de Madame de Pompadour, F.Boucher, 1756

스물넷에 루이15세의 정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여자.
어 머니의 아름다움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세금 징수원, 생부는 은행가였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교육을 받은 덕분에 고대 연극대사를 모두 외우고, 노래와 춤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취향과 목표를 가진 여자였다.

정부에서 창녀로, 뚜쟁이로 살았던 여자라는 악평도 있다. 이 그림속의 그녀는 그래도 ‘정부’였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아름답고, 아직 지치기 전. 그녀는 자신의 지성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때문에 거의 모든 초상화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배경에도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이 희귀한 책들은 요새도 마담 드 퐁파두르 컬렉션이라고 불리우며 비싸게 거래된단다.

20년동안 왕의 정부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녀는 왕이 사냥과 정사를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왕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지칠 줄 모르는 왕의 정력을 컨트롤하기 위해 사슴정원이라고 불리우는 젊은 여자 공급소(-_-;)를 만들기도 했다. 그 곳의 여자들한테는 러시아 왕자라고 속였다나 해서 이 남자가 왕이라는 건 사슴정원의 여자들은 꿈에도 몰랐다고.

이래저래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서 당시에 출판이 금지되어 있던 백과사전을 편찬하도록 하기도 하고, 이 그림을 그린 부쉐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후원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퐁파두르 이전까지 머리에 배모양의 장식 -_-; 을 이고 다닐 정도로 장식이 과잉된 모드가 유행이었으나, 그녀 이후로 이 그림속의 머리처럼 머리다운 머리스타일이 다시 유행하여 퐁파두르 헤어스타일이라고 불렸다. 또 꽃무늬 프린트를 즐겨 입어서 이 실크 프린트에는 퐁파두르 타프타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잡지 같은데서는 최초의 패셔니스타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을 무기로, 결혼도 한 번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정부가 되어 그 자리를 20년을 지킨 여자. 이 여자의 삶이 행복했을까. 애를 낳고도 이틀이 지나면 일어나서 왕의 여자로서 해야할 일을 했다고 한다. 젊은 여자와 자고 돌아온 왕과 국사와 외교를 논할 수 있던 그녀 뒤에는 그녀를 통해 신분 상승을 원했던 생부를 비롯한 부르주아 계급이 있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