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비교관찰기

고모는 혼자 되셔서 다섯 남매를 키웠다. 그 중 딸이 네 명이었다.
발길에 채이는 게 대학생인 시대였고, ‘배우지 못한 설움’ 같은 표현은 박제되어 가던 시기였다.

맞며느리 외모의 첫째는 여러 모로 전형적인 블루칼라에게 시집을 갔다.
새침한 둘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형부의 직업도 얼굴도 둘째 언니가 아이를 몇이나 낳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셋째 언니는 성격이 좋고 쾌활했다. 학벌은 좋지 않아도 좋은 회사에 다니는, 그러나 결국은 노동자인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막내. 나는 막내언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어려서 그녀의 목소리가 가성이라고 확신했다.
어떤 여자도 저런 목소리로 평생을 살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잘 모르는 전화를 받을 때 내는 ‘여보세요’의 톤으로 항상 말할 수 있다니,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많은 남자들에게 미사시간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천사같았다.
그녀는 예뻤고, 자매들 중에 가장 말랐고, 늘 그런 목소리로 얘기하는 여자였다.
막내 언니는 석사출신 연구원과 결혼했다. 사내아이를 낳았고, 좋은 차를 탄다.

내숭도 능력이다.
참하게 보이는 것도 능력이다.
자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반지를 사주고 싶은 여자로 보이는 것도 능력이다.
가꾸는 것도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능력이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바깥으로 알려진 것이 뭐고, 밖에서 잘 보이는 풍경이 어떤 건지가 중요하다.

뜬금없지만
L백화점 앞에서 성추행 당한 여자들이 울며 시위하는 걸 어깨가 네모난 아저씨들이 밀어버린 사건이 있었더라..는 사실 같은 건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나에게 L모 기업의 이미지가 않좋은 건,
결국 평판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거고, 능력이 없어서 그리 된 게 아닐까.
노조없이 행복한 S그룹의 경우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불행한 얼굴에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생활을 하며 알아서 기고 있어도,
바로 연상되잖아 – 또 하나의 가족.
가족은 가족인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의붓 아버지다. 직업은 써커스 단장으로 하면 딱 좋지 않을까.
양딸이 그네에서 재주넘다 떨어지면 채찍으로 때리고 밥을 굶기고 옷을 벗겨서 내쫓는.

학교에서 배운 건 글씨일 뿐이었다.
나 배운 도둑질은 어쩌면 막내 언니의 목소리 같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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