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

진실의 순간이란, 스페인의 마케팅 이론가 리처드 노먼 교수가 제창한 개념이다. 어떤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을 뜻한다. 원래는 투우에서 쓰는 용어라고 한다. 투우사가 마지막에 창을 들어 황소의 정수리를 찌르는 때를 말한다. 스페인 어로는 ‘Moment De La Verdad’ 라고.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은 주로 고객 접점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쓰이고, 서비스 업계에서 더 자주 쓰인다. 이 MOT 개념을 제대로 받아들인 예로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자주 등장한다. CEO 칼 얀슨은 고객과 직원이 만나는 15초의 짧은 순간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며, 이 짧은 시간동안 직원들은 고객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MOT에는 곱셈이 법칙이 적용된다는 그의 말이다. 고객 접점에서 한 순간 점수를 잃어 0점을 받게 되면, 그 후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상쇄되지 못하고, 곱셈의 법칙이 적용되어 0점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MOT 개념의 도입으로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던 항공사가 흑자로 돌아섰다는 뭐 누구나 예상한 이야기의 결말.

3월동안, ‘진실의 순간’이라는 문구를 계속 생각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관리받아 마땅한 진실의 순간에 무척 실망스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렸다.

나를 분기탱천하게 만든 – KT,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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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플러그 프리미엄’이라는 몹시 있어뵈는 서비스를 신청을 했다. 처음 신청하는 과정부터가 아주 난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분명 사장님의 질문에 센스있게 대답하는 젊은 사원을 등장시켜 광고를 뿌리셨는데, 가입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문의 전화 ‘여러’ 통을 한 끝에, 서울 하늘 아래 가입을 할 수 있는 대리점이 몇 군데 없다는 걸 알아냈고, 또 그 대리점 중 몇 군데는 자기들은 사실 아직은 준비가 안되어 가입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 첫번째 진실의 순간이었다. 대표 콜센터에 전화해서 가입문의를 하고, 가입가능한 대리점을 안내받기까지, 마음에 스크레치가 제대로 났다. 자,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퇴근 후 무려 신촌까지 가서 가입을 했다. 대리점 담당자는 처음 개통해 보는 거라며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처음이니까. 시간이 늦어서, 다음날 개통을 해준다고 했다. 모뎀만 받아서 대리점을 나왔다. 가입신청서를 KT(와이브로) 따로, KTF(아이플러그) 따로 써야 했다. 대리점을 나서는데 가입신청서 사본 같은 걸 아무것도 주지 않아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 10년 가까운 SKT의 충성 소비자가 KTF를 선택한 거 부터가 잘못이었어 젝일. 두 번째 진실의 순간에도, KT(F)는 나에게는 낙제점수에 가까웠다.

다음날, 5시가 되도록 와이브로는 연결이 되었으나 KTF 아이플러그는 개통이 되지 않았다. 대리점 담당자는 왜 개통이 안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고, “이제 되시나요, 안되시나요? 뭐라고 뜨나요? 아예, 다시 알아보겠습니다.”하는 전화를 반복했다. 결국 테크니컬한 부분을 담당하는 콜센터와 통화한 끝에, 대리점 담당자가 무슨 카드에 키를 입력하지 않고 나에게 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ㅡ_ㅡ 대리점 왈, 신촌까지 다시 오란다. (열라 황당)
회사 근처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냐고, 다른 대리점에서는 불가능하냐고 했더니, 가능하다면서 알아서 찾아가란다. 자기가 대리점을 다 조회할 수는 없단다. (미친!)
계속 질알한 끝에 가까운 판매점에서 그 키를 입력하고서야, 개통이 되었다.

– 세 번째 진실의 순간이었다. KT(F), 이 공무원 같은 XX들.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난 두근두근 KTX를 탔다. 칼 얀슨은 진실의 순간에는 곱셈의 법칙이 적용된다 했지만, 이 순간 제대로 연결만 되었어도 나는 덧셈의 법칙으로 점수를 줄 자세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KTX안에서도 인터넷이 된다 광고했거늘, 접속되지 않았다.


(접속된다매!! 언제 어디서나!! 흥!)

– 네 번째 진실의 순간이었다. 이제 슬슬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엔지니어 왈, KT에서 어느 날 이런 제품을 출시를 한다고 KTF에 통보를 했단다. 일반 아이플러그 제품은 충분히 테스트를 해보고 출시했지만, 아이플러그 프리미엄은 자기들이 검수도 못하고 내보냈단다. (이게 지금 할소리야!!) 그래도 삼성 애니콜이니 기계에 이상은 없지 않겠냐 한다. (이게 지금 할 소리야!!) 정 계속 안되시면 애니콜에 문의하란다. (이게 지금 할 소리야!!) 그리고 써보다가 맘에 안들면 14일 안에 취소할 수 있단다. (이게 지금 할 소리야!!)

**– 다섯번째. 아주 결정적인 진실의 순간이었다. KT(F)에게는 기회가 무려 다섯번이나 있었는데. 마케터들이 머리 쥐어 뜯어가매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돈쓰고 실행한다 한들, 조직 전체가 이 따구인데 뭘 할 수 있겠는가 말이지.
**

이 글의 결론.
 
나는 잠시 SK를 배신한 것을 벽보고 반성했다. 이런 공무원 집단. 광고를 그리 잘해주면 뭐해, 조직이 고객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걸. 오늘 집에 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도, 아이플러그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일, 이 망할 놈의 아이플러그 프리미엄인지 뭔지, 갔다 버릴라 한다.
SKT의 티로긴을 다시 신청할거다. 그 오바하는 사근사근한 SKT 콜센터 언니들이 그리웠더랬다.

충성, SKT. KTF는 만년 2위를 면치 못할게다, 저주를 퍼부으며.
이런 걸 써보겠다고 월 5만원 가까이를 쓰겠다고 생각한 내가 미쳤었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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