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물

우라사와 마노키 군 싸이에서 이 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가슴이 먹먹하여 멍하다.
내 살면서 어떤 남정네에게 받은 러브레터도 이만하지 못하였다.

일도 사랑도 사춘기 여자처럼 정신 못차리고 헤매고 있는 가을에
아, 이 녀석 보기 민망해서라도
열라 열심히 살아야지 주먹 불끈 쥐게 만드는.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동거인이 쓴 글.

그럴 때가 있다.

나와 너무나 가까워서, 굳이 말로 할 필요없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니-그런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사람들, 내 주변의 공기처럼, 말하자면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심히 내쉬던 산소들이 일순 묵직한 질량을 지닌 무엇으로 돌변해 들숨을 조여들듯, 과연 내가 ‘알고 있다’ 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이 존재는 정말로 무엇이었을까,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본다거나 하는 그런 때에, 그야말로 산소 정도쯤 될 무심한 때에, 문득.

좀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대한민국의 극히 올바르며 정상적이라 일컬을만한 남매 관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서로 갈구거나, 서로 쌩까는 것. 나는 이 매(妹)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성과 평생을 함께 하면서, 신기하게도 그 두가지 유형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관계를 맺어왔다. 코리언 스탠더드에 일백 프로 미달된 규격. 물론 갈굴때야 과감히 갈구고 쌩깔때는 단호히 까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정치경제문화사회전반적으로 매우 우호적이며 상호를 배려하는, 한마디로, 사이좋은 (맙소사!!) 남매!! 설령  전국의 그 어느 화목한 오누이가 그 정도쯤이야-라 비웃더라도, 이 언사 당당히 그들 앞에 본 남매의 우호관계를 과시할 수 있다. 란 것이 또한 본인의 자신 있는 견해이다. 제깟 것들이 사이 좋아봤자, 때아닌 오밤중에 난데없이 영화 보러 가자-란 제안에 서로 군소리 제하고 나서는 남매만 하겠냐고. 그리고 오랫만에, 실로 산소처럼 무심하게 누이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문득 그런 기분에 빠져든다. 이 아가씨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 스물 네 해를 한시도 빠지지 않고 지켜봐온 그녀의 스물 일곱해란, 어떤 것이었을까. 문득 깨닫는다. 그건

기나긴 기생(寄生)의 역사였다.

두말할 여지가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공생(共生)을 골몰하기는커녕 악어의 혓바닥까지 쪼아먹는 악어새처럼. 이십사년이란 인생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쪽은 항상 그녀였고, 항상 뒤편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다 흠, 이 정도로 싸우는 척만 하면 썩 문제없어 보이겠는걸. 정도의 마음으로 설레설레 뒤따르는 쪽은 항상 나였다. 언제나, 한마리 악어새처럼 태평한 심정으로.

항상 그런 식이었다. 금전도, 물품도, 혹은 문체도, 부모와의 관계도, 사회인으로서의 입지도, 심지어는 이십대의 가장 중요한 진로까지도, 그녀가 싸워 개척한 길 위를 편히 걸어왔기에, 나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안한 사람 행세를 해올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한다. 그래서, 문득 미안해진다. 일치감치 저 앞 멀찍이서 항상 치열하고 자신있게 살아가는 내 누이에게. 항상 빌붙으면서도 언제나 심통이나 부릴 줄 알았던 속 좁은 동생은. 가끔 동생놈 몰라보게 잘 컸다고 대견해하지만 그건 모두 그대의 파이팅 덕이었음을. 세상에 둘도 없을 누이에게,

산소만큼이나 무심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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