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문제

/ 자동차 동호회에서 서로를 알게 된
친한 줄 알았던 두 남정네가 서로 존대를 하는 걸 보고 물었다.

“어머, 친한 사이 아니었어요? 서로 극존칭을 쓰시네.”

대답은 그 동호회의 룰이 그렇다는 거였다.
말을 놓으면 위아래가 생기고, 파벌이 생기고, 분란이 생긴다고 했다.
몹시 친해지면 형동생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존댓말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어라는 언어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생각했다.
언어는 생각을 축약한다.

/ 설탕회사의 계열사를 다닐 때,
많이들 알고 있듯 직급 대신 아무개 ‘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회의할 때 일반적인 한국 대기업과는 다른 어떤 공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면,
예컨대 피도 안마른 신입사원이 CEO 이름 뒤에 님만 하나 붙여 부르면서
앞에서 뻘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많은 부분 그 호칭에서 비롯되었다.

호칭은 관계를 축약한다.

/ 꽤 오래 사귀었거나 결혼해서도 서로 존대하는 커플을 알고 있다.
웃긴 건 둘만 있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의 정책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희귀하여 아름다운 커플들은 특히 어른들 앞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반말을, 여자는 남자에게 존댓말을 한다.

이 장면 또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사회를 단순화 해서 보여준다.

/ 만나는 남자의 나이에 관계없이,
나는 자진하여 상대에게 높임말을 많이 쓰는 버릇이 있었다.

intimacy가 생겨도 마찬가지, 나는 그들을 존대했고,
뭐뭐 했어요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오늘 생각했다.
타인 앞에서 말이 바뀔지언정,
둘 사이에서는 앞으로 서로 존대말 쓰겠다고.
내게 상대가 반말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그 착해보이고 싶던 존댓말은
상대에게 의존하고 싶은 어리광이었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살겠다는 비겁함의 반영이었다.

너무나 클래식한 실수들을 반성하며,
스무살로 퇴행했던 나는 다시 제 나이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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