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02 12월 6일. 눈이 왔다.

문자를 받았다. 80자 안으로 끝나지 않은 문자.

오늘이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기 시작한 날이라는 걸, 문자를 받고서야 기억했다. 
“우리 딸 바쁘니? …. 오늘 엄마랑 아빠 결혼 기념일이야. 축하해 줘. ”
또박또박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를 챙겨 적은 문자. 건조한 마음으로 왜 80자 안으로 못쓰나 짜증을 내려다, 마음 아프고 미안해졌다.

스물 여섯 여자와 스물 여덟 남자가 회사 옆 자리 동료로서 만났고, 연애했고, 결혼했다. 여자는 일기를 썼다. 하드 커버 일기장은 남자가 처음 그 회사에 들어왔던 날을 기억한다. 어린 여자는 왜 나 좋다는 다른 남자보다 하필 이 남자가 좋은지 적기도 하고, 남색 펜으로 어설프게 얼굴을 그려보기도 하고, 남자의 이름을 한자로 써보기도 한다. 스물 여섯 여자는 연애를 하고,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고, 시집가서 서럽다고 울기도 하고, 결혼한 다음 해에는 임신했다고 딸일까 아들일까 쓰기도 한다. 어린 여자가 일기장 사던 때엔, 상상 못했을 거다. 딸이 그 일기장을 훔쳐보며 낄낄거리는 날이 올거라고.

집에 왔더니 어린 여자와 어린 남자가 늙어버려서는, TV를 보고 있었다.

어미는 내 나이에 나를 낳았는데, 나는 이 나이에 무얼 하고 있나면, 이런 일기나 적고 있다.

아닌 척 하려고 애썼지만 서로 지겨웠던 순간 많았고, 너절했던 날도 많았겠지.
그런 날 지나고 그렇게 손 붙잡고 앉아서 늙어가는 거다. 나는 아직 잘 모르는 종류의 사랑.

그 해 12월 6일에도 눈이 왔었다고 들었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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