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땐 몰랐거든요

1.

쳇, 나보다 한글도 늦게 깨우쳤는데 자식 공부 좀 했네.
의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한 심정은 이에 가까웠다.

다섯 살에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 엄마들도 금새 친해졌다. 우린 미술학원을 같이 다녔고, 유치원에 손 잡고 들어갔다. S는 사슴반이었고, 나는 기린반이었다. 선머슴아같은 나와 달리, 반도 너무 어울리게 ‘사슴’반이면서 말도 참 여자같이 해서 난 그 아이가 좋았다.

신기하게도 우린 연락이 끊기지 않았고, 새 학교에 진학하거나, 이사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할 때 서로 소식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2.

사슴반의 어머니는 잘 듣지 못했다.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쳐야 알아듣곤 하셨다. 오랜만에 통화한 그녀는 하고 많은 전공 중에 이비인후과를 갔다고 했다.

병원은 아직도 드라마 종합병원이 인기를 끌던 10년전에서 크게 버전업 된 것 같지 않다. 세상에, 반도 무려 사슴반 그 여리여리하고 가늘던 아이가 따귀도 맞고 엎드려뻗쳐도 하고 머리도 박는 조직에서 견디고 있다. 여자 제자는 다리 보는 재미라도 없으면 가르치지 않는다는 망언도 웃어 넘긴다. 머리를 박은 상태에서 대답하는 걸 못할까봐, 집에서 연습을 했다고 했다. 우리에겐 아직 힘이 없다.

놀이터에서 우리 친구할까, 하던 장면은 참 간단했다. 그러나 삶은 점점 간단치 않다. 어떤 동기는 피할 수 없게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사슴반은 가느다란 다리로도 폭력적 상황을 견뎌낼 것이다. 그녀도 같은 폭력을 연출할 수 있는 위치가 되면, 절실했던 첫 마음 같은 건 잊혀질까.

아아, 그녀의 견딤이 우리의 견딤이다. 마음이 아파 죽겠다. 비관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우린 고작 비관이나 하며 견딘다. 사회와 부조리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선배들은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글을 통해, 술자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비해 뭐가 그리 달라졌을까.

애초부터 권력은 정의나 연대같은 그런 순진한 단어로 깨지지 않는다. 깨진 듯 보였다가 더 세밀하고 정교해질 뿐. 그러니 우리는 견디고 견뎌서 저 권력의 끝자락에라도 편입되어 보겠다고 버둥거리고 있다. 고작 30대에 100억 벌은 부자에 관한 책이나 읽으면서.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영어 수업은 영어로 가르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대학교 1학년이 언니 저 앞으로 취직은 할 수 있을까요, 하면서 눈물을 질질 짤 때, 나는 해 줄 말이 없었다. 원정출산하고 온 선배를, 나는 욕할 수 없었다. 불합리함을 견디고 있는 친구에게, 나는 그래도 1년 금방 가잖아, 잘 버텨야지 뭐, 라고 밖엔 말할 수 없었다.

3.

저 봉우리를 넘으면 행복이 와라락 쏟아질 줄 알았다. 글자를 익힌 후부터는 주욱, 그럴듯한 어른으로 자라날테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화이팅을 외쳐왔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태도로는 평생 행복하기 어렵다. 분명히.

“다섯 살 땐 몰랐거든요”의 4개의 생각

  1.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태도에는 확실히,, 끝이 없더군요ㅡㅡ;
    미래를 포기한 채 현재를 즐기는 인생도 오래가지는 못하는 것 같고, 여기에도 적절한 중용의 덕이 필요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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