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을 결, 넋 혼

S의 후배가 결혼한다 들은 게 엊그젠데 파혼한단 말에, 아이고 이런 저런 생각이 산으로 간다.

대한민국 대졸 여자의 평균 결혼 연령이 28.5세라고 하니, 나는 이쯤에서 정신 차려야 맞다. 과친구들은 반은 시집갔고, 싱글인 친구들도 쫓기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로 손가락이라도 걸었나 싶은 계절이다. 이번 달 받은 청첩만 넷. 이야, 무섭다.

이 사람과 내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내 어미와 아비가 얼마나 좋아할 사람인지 판단하려고 애쓰고, 살림을 차릴 때 무슨 구 무슨 동에 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 따져본다. 현대에서 남성성의 존재 확인은 힘이 아니라 돈이다. 그러므로 다들 그 법칙에 투신할 준비를 철저히 하느니, 나의 자산 가치를 판단하여 무엇과 거래할 수 있을지 계산할지어다.

서초동으로 출근할 때 옆 건물에 결혼중계업(?)소가 있었다. 6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가 쪽을 바라보면 상담실 창문이 보였다. 단언하건데, 한 번도 그 상담실 두 칸이 온전히 비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수요와 공급이 있었고, 가격이 형성되는 기준이 있었다. 나는 철없이도 그들을 조소하였다. 내게는 그 상담실 문이 열리는 날 없을 거라 소리치며. 그러나 고해하자면, 작년 즈음부터 계속 생각해왔다. 나도 철들어야지. 사랑인지 연애인지 아무튼 그거, 그만하자, 뭐 해봐도 별 거 없잖아. 결혼할만한 사람 만나서 어미 아비 마음 편하게 해주며 효도하는거야. 누군가 너와 잘해보고 싶어 말하면, 그의 영혼보다 주변 정보를 스캐닝할 다짐을 해봤었다구. 정말로.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엔 철이 안난다. 결혼한 친구들의 안정된 감정이 부럽다가, 능력있고 내게 잘 하는 이 만나 비겁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생각하다가, 어므나 저 줄에 딸려 들어가, 은행처럼 번호 대기표를 뽑은 뒤 낙화암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친구는 야 너 꼭 남자처럼 이야기하는구나, 한다.

알아알아, 내 몸뚱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이다. 냉정히 보건데 내 머리가 뭐 그리 엄청난 부가가치를 세상에 내놓을 것 같지 않으시며, 스무살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눈가에 주름이 늘었거나 몸매가 맛이 가거나 한 건 아니지만 표정이 찌들었단 거 안다. 아니다, 심지어 맛이 가기 시작하는 조짐도 보인다. 그러므로 시옷 받침일 때가 최고였고 비읍 받침부터는 그렇지 않아 말하며 이게 뭐 농담이라고 웃어준다.

팔자 편할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객관화 하고, 상한가 치는 순간을 알며, 누구와 함께 살아야 인생 편할지를 결론 짓고, 그 상대를 내 둥지로 앉히는 방법을 안다. 여우처럼 본능적으로. 이놈이나 저놈이나 거기서 거기고, 결국 분명한 기준 하나를 만족시키면 충분하다고. 그 상대가 둥지를 따뜻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먹을 것을 가져올 재주가 분명한 사람이면, 나머지는 관계 없다고.

나는 팔자가 셀거야 내 입으로 말하였다. 나는 내 행/불행을 내 의지로 선택하며 살고 싶다. 그 선택의 결과로 토 할 때까지 울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타인이 내게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노라 말하면 허리가 꺾이도록 웃으리라 다짐하며.

아시다시피 나는야 한자 까막눈. 결혼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그 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맘대로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맺을 결結 넋 혼魂. 세상 모든 취향없고 비위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어졌다. 존경스럽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