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한다

현진이와 나가 살 때를 생각해보았다. 키, 몸무게, 허리, 발 등 거의 모든 치수가 같았기 때문에 각자의 옷장을 합치니 행복해졌던 건 좋았다. 그러나 두루마리 화장지나 샴푸, 세제 따위가 소진되는 속도, 매달 내는 전기나 가스요금 고지서 처리의 귀찮음, 수박이 먹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여름 따위가 매우 무섭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해 나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참 많이 울었다. 나만 울었던가, 아니 현진도 감정상태가 그리 평온했던 것 같지 않다. 축구를 해도 좋을만큼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나니 갑자기 그 좁디 좁은 방 생각이 났다. 룸메이트씨 집에 다녀오기라도 하는 주말이면 외로움은 감당못할 무게였다. 밤이 되면 벽이나 천정에서 나는 삐그덕 툭, 하는 소음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참으로 가난했다. 왜 용돈 다 떨어졌다고 집에 말을 못했을까. 뭐가 그리 자존심이 상해서. 키친타월 대신 스타벅스에서 냅킨을 왕창 집어다가 며칠을 버텼던 기억도 생생하다.

주말동안 주로 주택이라는 공간에 대해 쓴 책 두 권을 읽고 있자니,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 고시원이나 몇 평 이하의 원룸은 건축을 제한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뻘한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방을 나서면 가족의 살냄새와 가끔은 너절한 생활이 놓여있는 집이라는 공간. 강남 어디어디가 미분양 되었다는 게 뉴스가 되는 걸 보며, 우스운지 아쉬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주먹 불끈 쥐고, 살기 위한 공간 말고 투자를 위한 공간은 갖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물론 갖고 싶어도 가질 능력이 없다가 더 정답이지만.

“집을 생각한다”의 1개의 생각

  1. 한국인에게 집은 수면을 취하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마음의 안신처랄까요.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지않다면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살 이유가 많지 않겠죠. 글을 읽다보니 집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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