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uit of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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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들어 아주 사소하고 푼푼하며 부스러기 같아도 행복감을 느낄 때마다 메모를 하며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내가 언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인지를 나 스스로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리스트를 적어나갈 수록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는 건, 나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에서, 부나 승진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내 보스는 대리 승진했을 때가 가장 신났다고 하던데, 기억해보면 난 승진 메일을 받았을 때 아주 덤덤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 나도 좀 좋은가 싶었을 뿐. 설사 일과 목표를 테이블에 올리고 만난 사이여도, 작은 회사의 대표님들이나 대학생들과 만나 별 거 아닌 수다와 격려를 나누고, 당신이 잘 될 거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뒷모습을 보며 인사할 때가 정말 좋다. 내가 하는 일의 일부가 그들에게 작아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유치하고 뻔하고 민망하지만, ‘늘씬한’, ‘예쁜’, 따위 수식어가 붙은 상태로 내 이름을 불러줄 때 행복하고, 한성은 대리 (혹은 부장 ㅋㅋ)이라고 불릴 때보다 그냥 성은, 멜, 언니, 누나, 혹은 한성은 ‘님’으로 불릴 때 좋다. 퇴근 시간에 맞춰서 엄마가 버튼을 눌러둔 전기장판이 깔린 침대로 기어들어갈 때 완전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싶고, 샤워하고 해피바스 바디로션을 바를 때 완전 행복하다. 내가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으면서 좋아라하고, 문지영과 함께 필라테스 할 때 지영처럼 탄력있는 몸매처럼 될 날이 올까 난 왜 이토록 무근육일까 싶으면서도 산뜻하고 기분좋다. 엄마가 해 준 밥, 혹은 집밥과 비스무리하게 정성껏 차렸다고 느껴지는 식당밥을 먹을 때 행복하고, 흑설탕 스크럽으로 목욕할 때, 집 꾸밀 때, 미싱이나 뜨개질 할 때 행복하다. 내가 낳은 애도 아니건만 싸이에 올라오는 엄마 된 선후배들의 애기 사진 보면서 빙싯빙싯 웃고 앉았고, 아저씨들이 영상통화로 애기들이랑 통화하는 거 볼 때 완전 따뜻하고 좋다. 다들 전장에서는 날을 세우고 칼을 갈지만, 집에 가면 완전 팔불출에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게 축복스럽다. (좋은 아빠/엄마가 되려면 일 잘 하는 건 당연한 거다!)

(과연 지인들이 동의해 줄지는 모르겠으나 ㅋㅋㅋ) 내가 성취나 성공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잘못됐을까? 몇 년 전까지는, 내가 받은 것이 있으니 사회에 몹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내게 맡겨진 일은 돌뎅이 같은 책임감을 갖고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고 부담을 느꼈었다. 하지만 내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내게 가치로운 것이 다른 방향이라면 나는 그런 쪽에서 에너지를 찾으며 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별 일 없는 한 주였지만, 어이없게 잘 잤고(!), 잘 먹었고, 행복한 순간이 불안하고 힘든 순간보다 길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정말 중요하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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