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의 남자와 여자

학교 다닐 때 군호랑 윰댕이랑 공모전 나간다며 남자 화장품을 주제로 뭔가 끄적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시장은 급속도로 변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루밍에 열심인 남자애들 찾기가 참 쉬우니까. 누나, @#$에서 새로나온 자외선차단제 써봤어요? 완전 좋던데. 새로 나온 무슨 무슨 팩은요- (심지어 남자 화장품도 아니다…. 난 그런 거 나온 줄 모르고 있었는데….) 자기 전에 녹차 티백으로 뭘 하라는 둥 수준급 전문가들이 아주 흔해졌다. 이게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건지 화장품 회사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선 결과인지는 나도 모르겠소만.

안상현님과 마사지샵 이야길 하다가 나 아는데는 다 피부관리 하는데라, 했더니 그것도 좋단다. 그루밍 너무 열심히 하지 말어!! 남자가 그러면 안 예뻐~ 라고 했더니 살짝 노친네 취급한다. 흑. 남자는 점점 예뻐지고 여자는 점점 거칠어지시니 결국 하나로 수렴할 거라나.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는 멸종 위기다. 울 팀의 워킹 맘들은 집에 아이두고 나오면 일하는 동안은 아기 생각이 안난단다고 하시니 언니들 대단해. 외려 아저씨들은 가족사진을 책상 위에 전시하며 아이 이야기를 할 때는 한껏 애틋하시다. 게다가 오늘 받은 충격. 서점에 피부 미남(!) 프로젝트라는 책이 버젓히 누워있었다. 어휴. 피부가 참 좋으세요, 이 말 들으려고 얼마나 애쓰면서 사는데 이제 피부 상태를 두고도 남자랑 경쟁해야 하는거니. 흑흑. 혹은 여자로서 시장가치 안에 내가 평생 벌어들일 수 있는 돈도 포함된지 오래라는 걸 이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기정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ㅋㅋ (자 이 자리를 빌어 @boogab 오라버니 울 기댕 거둬주어 고마워요 ㅎㅎ) 소개팅 하면서 전 결혼하면 일 안할건데요~ 하면 남자분들이 먼저 도망갈 걸. 남자들도 약아진 거지. 결정적 장점이 없다면 고만고만하게 다 과락은 면해야 한다.

양성성을 모두 갖춘, 외적 내적으로 훌륭한 젊은이를 지향하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예쁘장하면 됐지 똑똑하고 성공까지 해야하고, 공부잘했고 돈 잘벌면 됐지 훈남에 잘 관리된 피부와 몸매까지 자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 그러나 언제든 과도기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어두운데서 열심히 비비크림 바르셔서 인절미 같은 얼굴에 송충이 눈썹을 한 놈을 마주했을 때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거나 (신상아, 니 얘기야) 남자도 화장이 대세라니 메이크업은 하는데 주변 아무도 클렌징에 대해 강조해 주지 않아서 피부가 점점 안좋아진다거나, 이번 달 피부과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기 힘들다는 걸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남자분을 만난다거나 하면, 아 이건 뭔가요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윤희 언니가 서래마을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제 남자다운 남자 찾으면 안된다며, 내 애를 나아도는 무슨, 평생 먼저 사귀자는 고백 한 번 안하고 살고 있는 이삼십대 남자가 수두룩 할거라며, 요새 남자들은 가능성을 무척 많이 보여주지 않으면 들이대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한 마디로 테스토스테론의 종말. 이 시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멜 현정 윤희언니 모두 남자다운 남자는 어디갔냐고 통탄하였으나 집에 와 다시 생각하니 문제는 그 자리에 있는 우리 셋 모두 과연 전통적인 관점에서 여자다운가 하는 거였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반가워 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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