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왜 하니

주말에 우연히 tvN에서 하는 ‘공부의 비법’이라는 희안한 쇼를 보게 됬다. 영역별 일타강사(강좌 개설하자마자 마감되는 강사를 지칭)들이 나와서 애들을 협박해가며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참 구라빨 세게 잘도 한다. 이 정도 되면 선생님이 아니라 거의 엔터테이너 수준이다. 나만 믿으면 9등급이 1등급 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국정 교과서만 쓰는 게 아닌데 교과서만 보면 반드시 망한다나.

인강 시대에 이런 식으로 쉽게 공부방법을 알려준다면 도움이야 되겠지만, 질문이 틀렸다. 공부 잘해서 1등급 받고 좋은 학교 가면, 그 다음엔 뭘 할까? 그래봤자 어짜피 세계 100대 순위에도 못 드는 학교고 학부 우리 나라에서 안 나온 아이들도 이제 수두룩한데. 이젠 그나마 대학 입학 후에 술마시고 방황이라도 하던 시기도 없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맘 먹은 아이들의 학점 따기 레이스는 네버앤딩인데. 레쥬메 셀링하기 충분할 정도의 스펙을 갖추고 신입사원 시절부터 시원시원하게 쏴주는 (그러나 직원의 여가는 다 내끄야~! 라고 외치는) 회사를 가면, 그 다음은? 피라미드의 끝에 누가 누가 먼저 올라가나 묻는, 다시 반복되는 경쟁의 무한 루프.

A가 시계 산 거 자랑하더라. 모임에 B가 새 차 끌고 나왔어. C가 벌써 이사 달더니 아나운서 아무개랑 사귀어. 진짜 민간인이랑 다르긴 하던데. 나도 성공해서 연예인 만날까? D가 H대 어드미션 나왔대. “분발해야겠어.”

어느새 내 주변은 이렇게도 분발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다들 어디가서 스펙으로 안 밀린다. 어릴 때 생전 공부 못 한다는 소리 못들어보신 분들. 그러나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데 익숙하고 내가 1등급이라는 확신을 혼자서는 갖지 못하고 반드시 외부의 시선이 필요하다. 진짜로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또 무척 똑똑들 하지만, 그게 다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요만큼도 모른다. 내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심지어는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조차 계속 주변에 물어보고 확인 도장을 받아야 안다. 처음부터 바라보는 곳이 잘못되었으니 평생을 계속 분발만 한다. 제일 뻘쭘한 케이스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구나 박수치는, 꿈꿔온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 중년의 사춘기가 와버린다. 여기서 잘못 삐끗하면 숭하게 늙는 게 어떤 건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시기 시작한다. 아이고….

삶에 의미를 찾는데 꼭 종교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분발은 껍데기 뿐인 결과를 돌려준다. 이 글은 또한 맨날 분발해야한다며, 불안감만 느끼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내게 쓰는 편지다.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하다. 공부는 왜 하고 일은 왜 하고 사람은 왜 만나고 사랑은 왜 하나. 너는 왜 세상에 나와서는 밥을 축내면서 살아계시는가. 진정함 없이는 열심이 다 소용이 없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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