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맞이, 사랑에 대해

1.

시속 200km 넘게 밟는 차에서 겁내기는 커녕 이거 너무 재밌다며 신나하길래 결혼했다. (체스터님)
GIS 전공한 여자가 어쩌다 SI회사에 취업해 고생하길래 프로그래밍 좀 가르쳐주다가 결혼했다. (울 이사님)
이 여자 나보다 더 심하길래(?) 결혼했다. 그래서 별명도 덕후옹주다. (김국현님)
이 남자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서 치밀하게 기획하여 사고 쳐서 잡았다. (절대 누구라고 말 못하지. 오빠는 평생 모르셔야 함! ㅎㅎ)
유학갔다 방학에 한국 들어와서, 집에서 선보라 그래서 나갔다. 근데 얼떨결에 약혼하고 결혼하고 정신차려보니 애가 둘이다. (아직 이 애 엄마 스물일곱인가 여덟밖에 안됐다. 게다가 그 사이에 박사까지!)
같이 사업하며 가열차게 싸우다 보니 미운정 고운정 들어 결혼했다. (히히 너무 단순화시키나, 쏭언니와 동훈오빠)
옆 자리 앉은 여직원한테 반해서 사내 경쟁자 2명을 제치고 열렬하고도 스릴 넘치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 (울 아빠)
따라다니는 남자들 다 싫었는데, 이 남자는 어쩌다 같이 우산을 썼는데 하나도 안 불편하고 마음 편해서 결혼했다. 게다가 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큰 소리 쳤다. (울 엄마)

주위 의견을 종합하면, 하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 이 사람이랑 한 침대에서 평생을 늙게 되는데는 생각보다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평생을, 어려운 문제를 같이 잘 풀면서, 힘든 일을 잘 지나 보내면서, 좋은 일에 한껏 기뻐하면서, 어떻게 같이 잘 사느냐가 아닐까.

 

2.

주변을 보면 부모가 되는 건 꽤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일인듯 싶다. 더군다나 한국 상황에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안 쉬운게 분명하다. 좋은 학교를 보내고 좋은 교육을 시키고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그래서 결국 나의 계급을 뛰어넘을 훌륭한 2세(?)로 키우기 위해 오늘도 부모된 자들은 불철주야 노력중이시다.

엊그제 출근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내 팔을 잡더니 슬픈 표정으로,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너 유학도 못 보내주고 더 클 수 있는데 못 키워주나 싶어서 미안해, 라고 한다.

아 엄마 무슨 말이야 내가 퍼져서 공부 더 안하는거에요 나 공부 지금은 하기 싫다며 신경질 팍 부리고 뛰쳐나와선 차 안에서 징징운다. 아이 평생 그렇게 충분히 해주고도 뭘 더 해주고 싶어하는 거야, 그래서 부모고 난 자식인거야, 난 왜 이 모양인거야 하고.

 

3.

생각해보면 엄마는 너무 여렸고, 아빠는 아주 서툴렀다. 아빠는 특히 분노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잘 몰라 나와 동생에게 상처 주는 일이 잦았고. 한번 날렸다 하면 이건 완전 스크래치가 아니라 칼로 푹 돌려서 후벼팠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어른스러워(?) 지셨지만. 엄마는 보통의 한국 아줌마들과는 달리 평생 그 상황을 전혀 중재하지 못했다. 난 늘 엄마를 엄마이기보다 여자로, 무르고 여린 사람으로 여겼다.

막내 아들과 결혼했으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돈 모아 고모들을 시집보냈고, 접대할 일이 있는 부서에서 근무할 땐 세 시고 네 시고 관계없이 취한 아빨 태우러 광화문으로 출동하던 엄마. 불면증이 있던 아빠가 잠들라치면 고3때도 얄짤없이 아빠 주무신다며 나가라고 날 내쫗던 엄마. 그리고 온 집안을 돌며 전화 플러그를 뽑아버리던 모습. 그리고 아빠 아팠던 몇 해 동안 완전 지극하여, 결국 아빨 낫게 한 대단한 아짐마. 아빠는 주말마다 들로 산으로 놀러갈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사람이었고 (동생이랑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되냐고 울었었다) 거의 저녁은 집에 와서 같이 드셨다. 엄마가 만든 그 어떤 심하게 창의적인 음식에도 커맨트 하는 법이 없었고, 늘 맛있어 죽어가는 표정이었다(혹시 미맹이었나? ㅋㅋ). 물론 우리에게도 식탁 앞 투정따위 허락해 주지 않은 건 당연. 니네 엄마처럼 착한 사람 예쁜 사람 또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셨고.

아무튼, 중요한 건 아빠도 엄마도 서로에게 충실했고, 한 팀이었고, 육십을 앞 둔 이 날 이때까지 아직도 서로에게 이제 내가 남자로/여자로 보이지 않냐며 토라지고 투정 부리고, 사랑한다는 거다. 보고 있으면 어이없을 때 많아. 내가 내 부모를 (감히) 평가할 때 가장 좋은 점수를 드릴 수 있는 건 서로를 심하게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나머지 어떤 내용도 그 사랑 앞에 의미가 없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아들에게 좋은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고, 그 지위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삶의 태도를 프로그래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도 안 되어 본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게 웃기지만) 아이는 많은 부분 이미 본성과 자기 자리를 갖고 태어나고, 양육으로 저 아일 어떻게 저떻게 하겠다는 건 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좌뇌형 인간들이 보면 비웃을런지 모르나. 충분히 사랑으로 가득한 집의 분위기와 내가 조건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 사랑이 먼저다. 그에 뒤 따라온 모든 것들도 부모님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이었고 최고였지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게 정말 세상 최고로 좋았다. 단, 나도 이렇게 사랑하며 살거라고 기대하게 만드신 게 좀 걱정스럽긴 하다. 난 내 어버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다. 🙂

“어버이날 맞이, 사랑에 대해”의 7개의 생각

  1. 뜬금없이 4년전 글에 댓글을 남기게 됐어요:) 읽을 때 마다 마음이 말랑말랑 따뜻해지는 것 같아서 가끔 생각나곤해요 ㅎㅎ 빨간 글씨가 제 머리에 콱 박혀있어요. 오늘은 삼성카드 아부지 마케팅 영상보다가 생각나서.. 이전에 아빠에게 결혼기념일 얘길 했더니 매일이 결혼 기념일이라고 했던 답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 상황도 이 글도 보고있자면 므흣~.~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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