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보다 쎄

오랜만에 설탕회사 아저씨들과 간 술자리는 어색했다. 노래를 부르지도 여자를 부르지도 않지만 그냥 술이나 조금 마실 뿐이지만, 참 희안하게 불편했다.

ㅈㅎㅅ님 딸래미의 전화 너머 목소리가 오늘 본 풍경 중 제일 재미있었는데, 같이 계시는 동안 딸래미 전화를 두 세 번쯤 받으셨으려나. 그러더니 11시까지는 터치 다운해야 한다며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생소했다. 내가 아는 그가 저런 아빠였던가. 귀찮아 죽겠다고, 거의 스토커라고 하면서도 지금 벌써 6학년이라며, 사춘기 지나고 나면 아빠랑은 멀어질 일만 남았다고, 귀찮아도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얘 아니었으면 진작 이혼했지, 라는 말도 딸려왔다.

아빠 언제 들어오시는지 전화해보라는 엄마의 지령에, 나도 그렇게 전화를 걸었었다. 아빠가 조근조근하게 받은 전화도 사실은 사무실이 아니라 술집이었을까. 아마 그랬겠지. 지금 가면 막혀서, 할 일이 아직 남아서, 아빠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등등. 12시 전엔 들어갈거야, 딸기 사다줄게. 울 아빠는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매일 매일 같은 학교 나오지도 않은 선후배 및 형님아우님들과 술자리 약속을 잡는 타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언제 오시냐고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전화를 꽤 한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이건 아주아주아주 뻔한 초식이다.

반짝반짝 예뻤던 순간은 아주 금방 바래질 것이다. 지금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건 못할 거 같은데, 언젠가는 아이를 무기로 쓰는 뻔한 아내가 되는 날이 내게도 올까. 누군가에게 평생 여자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세상에서 젤 이루기 힘든 일인듯도 하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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