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행복을 물었더니

주일에 엄마가 할머니 보러 간 사이에, 아빠는 굶고 있었다. 성당서 허둥지둥 돌아오니 아니나 다를까 배고파 죽겠다~하는 표정으로 (늙은 슈렉 고양이 눈을 하고) 쳐다본다. 아이고… 엄마 저 아저씨 앞으로 어쩔거야… 하는 말을 속으로만 하고, 급하게 밥상을 차린다. 어색한 고요함 뒤에 터진 수다. 타인에게서 받은 질문을 아빠에게 한다. 아빠는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원래 돈이랑 행복은 상관이 없지만, 이라는 말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아빠와 내가 공유하는 욕망이 일 순위로 나온다. 맘에 드는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싶고, 그 집이 너랑 니 동생이 낳은 자식이 들러도 뛰어놀 수 있을 정도의 크기와 거리였음 싶고, 늙어서 너희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을만큼 계속 벌고 싶다. 그리고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을만큼 건강하고 싶다고.

내 아버지가 세상을 겨누고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또 그럴 여건도 안 되었다는 거 안다. 당신의 행복은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와 함께 먹는 저녁이었고, 스크랩북 여러 권에 빛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듣도 보도 못한 여행지였고, TV 한 번 제대로 못 키고 보고 싶은 드라마 꾹 참아가며 우리한테 읽어주던 책이었다. 한 회사 30년 넘게 다니며 드럽고 치사한 거 버텼을 당신 맘을 상상한다. 뭘 받긴 커녕 상처만 물려받은 아들 주제에 부모님 모시고 고모들 다 시집보낼 때 무슨 맘이었을까 상상한다. 종종 분노감정을 처리하는 데 참 서툴지만, 이젠 당신의 어느 조각이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이해한다. 

별 것도 없는 밥상에 앉아 아빠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열라 좋던 날씨의 반짝거리는 햇빛이 겹치면서 이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졌다. 이제 안 아프고 나아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혼자 밥 안 먹고 내가 챙겨주길 (불쌍하게) 기다려줘서 고맙고, 다른 애들 아빠보다 머리도 하나도 안 하얘지고 잘 생겨서 고맙다고. 자꾸 외할머니 모시고 살자고 말 꺼내서 고맙고, 아빠가 내 아빠여서 고맙다고.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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