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거리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다. 기대와 실제 사이의 간격은 멀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자꾸 사랑을 주는 사람을 약올린다.

이번 주 와인 클래스를 들으며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하나였다.
“와인이 좋으시면 이걸 업으로 삼진 마세요.”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에 다녔던 이였다. 부연이 필요없었다. 그렇죠. 정말 좋아하는 건 좀 멀리 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

거리를 좁히면 현실이 드러난다.
존경하던 이에게서 발견한 허름한 구석은,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발견한 넓고 깊은 모공은,
으헉 이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땡깡피우고 싶게 만든다.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일수록, 알고 보면 지루한 뒷태가 심상찮은 법. 다가가고 다가가서 사랑하는 무언가를 나와 합쳐 버릴 수록, 그 사랑스러웠던 점들은 다 어디가고 별스럽지 않은 일상만 남는다.

그리고 차츰 식어간다.
두근거리던 마음은 당연해지고, 아무렇지 않아지고, 어느 날엔가는 실망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건 내 생각과 다르다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아 멀리서 보니 날 유혹한 특징들이 드러나 다시 곁으로 간다. 이렇게 혼자 밀어냈다 당기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전혀 양가적이지 않은 100% 사랑이란 세상에 없을지도.

안전하고 싶으면 그냥 멀리 두는 게 좋다. 실망할 일도 속상할 일도 없게.
하지만 그저 멀리서 (변태같이) 바라보기만 하면,
나는 사랑한 것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무르고 싶어지더라도,
오늘은 열심히 다가간다. 안전 거리는 개뿔, 혼잣말하며.

“안전 거리”의 5개의 생각

  1. 이렇게 정확한 표현이라니… 이정도로 관계 및 상황을 인지하시는 분이라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셔도 지혜롭게 잘 대처하실듯 싶네요. 저번에도 느꼈지만 글 참 잘쓰시네여… ^^

    좋아요

    1. 와 제가 좋아하는 칭찬을 두 가지나 해주셨어요! 글 못 쓰는 사람한테 잘 쓴다는 칭찬 열라 듣기 좋고, 평상시에 ‘중요한 건 살면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다루는 내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잘 대처할거다란 말도 듣기 좋네요. 고맙습니다 🙂

      좋아요

  2. 정말 아주 멀리서 바라보지만, 잘 될 거라 믿어 의심지 않아요. 힘들지만, 그대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 잊지마시고.. 잘되면 그대가 거쳐간 발길들 살펴주세요.
    세상에 갓 나왔을때, 취미가 무어냐는 면접관의 말에 전산이 업이 된 순간부터 취미가 없어졌다고 했던 기억이..
    굿 럭

    좋아요

  3. 사랑에 관한 최고의 통찰이군요… 그것도 이 짧은 글에… 깊은 통찰을 담은 글은 언제나 아름답더군요. 아름다움에 깊히 감화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