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ines & Rituals

난 ‘인생 뭐 별 거 있냐’는 말과, 저 말을 뱉을 때의 말투가 소름돋도록 싫다. 누구에게나 별 것으로 가득해야만 할 인생을 모욕하는 말로 들린다. 특히 이제 사회물 먹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남자애들 입에서 저 말이 나오면 뒷목을 탁 쳐주면서 야! 말 그 따위로 밖에 못해? 인생이 완전 별 거 있지! 하고 신경질 부리고 싶어진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 만난 날이 두 자리수가 넘어가면 발생하는 기념일(난 만난 지 며칠됐다는 기념일은 안세지만…), 입사일(MS는 입사 1년 채우면 기념으로 케익을 주는데 잘 버텼다 장하다는 의미), 첫 키스한 날(내 부모님은 이 날을 기념한다. 그렇다고 뭐 뻑적지근하게 뭘 하는 건 아니고 오늘이 그 날이야… 기억나? 정도의 대화를 추억돋는 표정으로 주고 받은 후 허그 한 판), 한 해의 첫날과 마지막 날 등등… 리추얼을 만들 수 있는 날은 쎄고 쎘다.

우리가 덩어리로 받은 시간, 받긴 받았어도 덩어리 크기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 줄여서 인생. 그 시간에 틈을 내서 우리는 특별한 날들을 심는다.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을 내일을 조금 신선한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기회. 이런 기회는 의식적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이런 기회를 잘 갖는 게 삶을 행복으로 채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은 아주 좋은 날이다. 새해 첫 날이 두 번 있는 셈이니 두 번 돌아보고 작심삼일도 두 번 할 수 있다. 🙂 이미 1/12이 지나갔지만 우리집은 구정 쇤다! 고 외쳐주면 모든 게 용서된다. (시집 장가 가기 전까진 세뱃돈도 받고!) 어릴 땐 명절과 제사도 그저 싫기만 했는데, 삶의 리추얼이 뜻은 퇴색하고 형식만 남은 거라고 이해하면 맘이 많이 편해진다. 그냥 family gathering 할 수 있는 기회. 이왕이면 뜻을 살리고 형식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면 더 좋겠지만.

가족 생일도 중요하다. 꼭 화려한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래 네가 태어난 날이 몇 년 전 오늘이지, 그 날 날씨가 어땠고 네 주변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었지, 네 엄마가 널 가졌을 때 뭘 자주 먹고 싶어했고, 이름은 후보 뭐뭐뭐 중에 골랐던 거야, 이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생일 케익이 없어도, 끽해야 인스턴트 미역국을 먹게 된대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진심으로 이 날을 기념(정의: 뭔가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함)하는 것이다.

단위가 꼭 날이 될 필요도 없지. 하루 중에도 이런 틈새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침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던지,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진을 한 폴더에 모아두고 열어본다던지, 일주일에 이틀은 꼭 운동을 한다던지, 토요일 오전은 무조건 늦잠을 잔다던지, 자기전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바르고 좋아하는 향초를 태운다던지… 뭐 이런 ‘되풀이’ 이벤트는 얼마든지 만들기 나름이다.

생일은 완전 축하할 일이고, 새해 인사는 마음을 다해 할 말이며, 기념일은 잘 챙길 일이다. 기념일을 잊을 때 누군가가 서운해 하는 건 빈손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느끼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빈손으로도 얼마든지 그 마음을 증명한다. ㅋㅋ

풍부하게 느끼고, 다양하게 감사하며, 충분히 행복하고, 노력한 만큼 이루고,
무엇보다 건강할 테다.

어서와~ 음력으로도 2011년.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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