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화

오늘 학교에 왔다가 들은 교수님 이야기가 안쓰러워 맘이 안좋다. 그녀는 나보다 6-7살 나이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 임신한 상태이고, 올해 처음으로 모교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부군께서 무려 5년동안 프랑스로 발령이 났다고,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이 한국에 없을지도 모른다며 속상해 했다. 며칠 전 다른 자리에서 들은 서울대 교수님 이야기도 비슷했다. 이 분은 남자분인데, 아내는 스페인 문학을 전공했고, 국내에서는 이 전공이 개설된 학교가 몇 없어 미국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결혼하고선 계속 떨어져 살았고 이틀에 한 번 스카이프를 한다고 한다. 결혼한지 오래지만 아이는 없다고 했다.

주변에 이렇게 경력 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사는 커플을 종종 보았다. 한국과 싱가폴 / 일본 / 상하이나 베이징 / 홍콩 정도는 떨어져 살만도 하겠다 싶었는데, 한국과 미국, 한국과 프랑스는 너무 멀자나!! 찾아보니 이러한 commuter marriages는 미국에서만 3.5 million으로, 1990년 이후 2배가 넘게 증가했단다. 3/5 정도가 일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떨어져 산다고 추산되고, 전체 결혼한 커플의 3.1%가 떨어져 산다고. 도시에 살고, 교육 수준이 높고, 젊을 수록 commuter marriages가 증가한다고.

한국 통계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맞벌이나 아내의 경력 때문이 아니어도 자녀의 교육 때문에 기러기가 된 아버지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으니 퍼센티지는 적지 않을 것 같다. 처음 떨어져 살게 된 이유가 뭐였건 대체 뭘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며 떨어져 지내는지. 마무리가 좋으면 모르지만 이렇게 떨어져 산 커플이 파국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 부부는 한 침대를 써야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지혜롭다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서울대/이대 교수 자리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통 10년이 넘는 시간을 저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을 테니 한 쪽이 희생하여 사는 나라를 합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는 자녀 교육 때문에 떨어져 산 부부, 그 부부의 행복은 밀어둔다 쳐도, 그렇게 배운 자녀들이 잘 되면 커서 무엇이 될까. 우리 교수님들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지구가 좁아라 바쁘게 사는 코스모폴리탄으로 성장하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얼마전 오래도록 원하던 지위를 얻은 친구가 했던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저 학교를 가면, 어떤 시험을 통과하면, 이 과정을 끝내면, 내가 꿈꾸던 무지개빛 행복이 그 너머에 있을 줄 알았다고.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한 것도 잠시, 친구도 친구의 남편도 그 라이센스를 갖고도 여전히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삶이 일상이라고 했다. 내가 원했던 무지개 너머 세상은 대체 언제 오는 거냐 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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