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우리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관리해주시는 아저씨는 중국인이다. 늘 긴가민가하게 술냄새를 풍기고, 한국어를 아주 잘하진 못해서 처음보는 사람은 아저씨 말투가 불친절하고 퉁명하다고 생각한다. 아저씬 건물 1층 구석 의자에 앉아서 뭔가 읽고 있을 때가 많은데, 읽는 책들이 도대체 맥락이 없어서 누군가 버린 책들이 아닐까 짐작한다. 친구는 있나, 이 빌딩에서 먹고자는 것 같은데 가족은 있나, 가끔 맘이 쓰인다.

얼핏 퉁퉁거리는 것 같은 말투의 이 아저씨, 1년 넘게 겪으니 참 친절하다. 고장나 버려야 하는 의자가 한동안 회의실 구석에 쌓여있었다. 덩치 좋은 녀석들도 수수방관한 채로 계절이 바뀌었는데, 지나가는 말로 걔들을 치우고 싶은데 어떡할지 모르겠다 했더니 “내가 도와줄까요?”하고선 올라오셨다. 뚝딱뚝딱 의자들을 해체하고 쓰레기봉투를 준비하라 지령을 내린 후 순식간에 내 쌓인 체증을 들쳐메고 사라지심. 지난 금요일 밤엔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잔소리를 하러 오셨다가 “전등이 자꾸 나가요, 새 걸 갈아껴봐도 그래요.”하고 내 징징이는 소릴 듣게 되셨다. 그리고 주말 지나 월요일, 제깍 전기업자를 섭외해오셔서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걸 알게 해주셨다! (아 세상이 이렇게 밝았던가?) 평상시 주차할 때도 아저씨는 퉁명시크버전으로 가이드를 꼭 해주시고, 가끔 차를 빼달라 부탁하러 올라오실 때는 괜히 본인이 미안해 하신다.

나는 아저씨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고, 어쩌다가 빌딩 관리인을 하며 지내게 된걸까 소설을 써본다. 우리 모두에겐 한동안 드라마틱했던 시기가 있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아저씬 왜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실까 상상한다.

우리가 일하는 하루하루는 이런 분들께 신세지고 굴러간다. 의식하고 신경쓰지 않으면 지나친다. 아저씨 꼭 설 선물이라도 챙겨야지, 다짐.

오늘 전기줄에 걸려 사무실에서 정말 대차게 넘어졌는데, 넘어질 때 허리도 같이 삐걱했는지 밤이 깊을 수록 너무 아프다. 이 글은 고통을 잊어보려고 누워서 폰으로 썼다. 흑…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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