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에 대하여

임 여사가 대표님이 된지 일 년이 됐다. 나는 내일 모레 환갑을 앞둔, 나와 동생을 낳아 키워내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주부였던 여자를 과소 평가했다. 시작할 무렵 그녀는 참 어리버리했다. 임 여사님이 손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안절부절했었다.

임 여사님들은 친절하지 않은 조카 혹은 딸년에게 키워드 광고 하는 법도 배우고, 블로그 하는 법도 배우셨다. 학습 속도가 빨랐다. 임여사는 신나했다. 이 불경기에 엄청난 수입은 아닐지언정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걸. 피곤할 때도 많다. 하루 종일 있었던 모든 일을 중계하고 싶어하시니까. 좋은 손님, 나쁜 손님, 이상한 손님 이야기는 화수분처럼 끝도 없었다.

오늘 우연히 손님 전화를 받는 걸 들었는데, 어머 임 여사 여우 다 됐네. 적당히 사람 안달나게, 세련되게, 물어봐야 하는 정보들 챙겨가면서 전화 참 잘 받더라는. 아 기특하기 짝이 없다.

 

학생일 때는 이런 10년 후를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앵커 멘트를 하고 있는 후배는, 가장 예쁘장하게 태어난 애가 아니라 가장 묵묵했던 애다. 이 친구가 처음 가서 앉은 자리는, 아 그녀가 가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기자상을 탔다기에 찾아 본 뉴스. 리포트하는 정치부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그럴 듯 했다. 난 무용가의 딸인 그녀가 저 거친 삶을 지속하기엔 너무 여리고 가늘다고 걱정했다. 한편 딱 보기에도 그 일을 위해 태어난 듯 어울렸던 친구는, 엉뚱한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엉뚱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엄마를 보면서, 친구들을 보면서 한 방향으로 묵묵한 힘이 쌓이면 대단해 지는 걸 본다. 경력 단절이 길어도 내 어미만큼 30년씩이나 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직업의 미래가 불확실할 지언정 얼굴 파는 직업만 할까.

그녀들만큼만 꾸준하면, 뭐든 되겠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내 어미를 포함하여, 다음 10년 뒤에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임 여사는 아마도, 계속 늙지 않고 뭔가를 배우고 있을 거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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