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은 손녀가 할미에게
네 눈이 아무리 높아봐야 눈썹 밑에 있다던 우리 할머니가 오늘은 이런 말을 했다.
배운 니가 한 번 말해봐라, 이 정도면 안락사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온 병원이 노인네 천지야, 이렇게 죽을만 하면 살려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그러나 이내, 내 친구들 중에 외손주 못 본 건 당신밖에 없다고 넌 뭐하고 있냐며 분발하라고 구박이시다.
요새 그는 자꾸 주기도문을 한 문장씩 빼고 외우는데, 이거 깜빡했다고 용서 안해주는 하느님이면 그거 사람이지 하느님 아니란다. 내가 아는데 그렇게 속좁은 이 아니라고 해서 우릴 웃기고.
세상 누구에게도 함부로 기대려 하지 않았던,
아니 기대고 싶어도 기댈 구석이 없었던 당신에게도
이젠 숟가락 드는 일마저 힘이 부치는 날이 왔다.
노인이 되고도 늘 쨍하던 할미는, 점점 빛나던 특징들을 잃어가고 있다. 기억은 바래고 눈물은 흔해진다. 꼿꼿하게 내가 알아서 간다며 바래다 주는 것도 거부하던 노인네가 빵조각을 들고 새끼들 먹이고 싶어도 그저 부족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웅크려 울고 있었다.
고생스런 삶에도 늘 고우셨던 할머니에게 맞는, 더 우아한 마지막을 딱히 찾아드릴 수 없으니 화가 난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슬슬 고장이 나다가 이내 유효기간이 다하게 되는 일은 참 쓸쓸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