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다듬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해 왔다.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꾸미려 했던,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이기도 했던 사람. 그리고 요새 나는 그 장면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오면서 이력에서 가장 긴 시간을 출근과 퇴근을 않고 살아보니 숨이 안 쉬어 지더라. 참 사람이란 간사하다. 일찍 눈 떠서 추운 날씨에 나서야 할 땐 쉬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 그 반복이 그립다. 일어나 씻고, 옷을 고르고, 자외선차단제나 엄청난 스피드로 쳐발쳐발 한 후 아 또 늦었다 우다다다 아파트 현관을 열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공격적으로 누르던 그 반복.

그건 그냥 스스로를 위해서 했던 행동일 수도 있겠구나. 누구 보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고 보듬으려고 하는 행동.

엄마는 결혼한 후 일을 그만 두었었다. 요새 같아도 눈치 보였을 사내 커플이었던데다, 그 때는 결혼하면인가 임신하면인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각서 같은 걸 ‘여’직원에게 따로 받았다고 했으니까. 엄마 처녀 때 입었던 옷인데, 하며 낡은 옷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던 그 감정을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편한 옷 말고 갖춰 입어야 하는 옷(말하자면 전투를 위한 옷)은, 집에 있을 땐 골라 입게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미래를 그리며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디 가서 직업을 물을 때 주부라고 답해야 하는 상황도 아예 그린 적이 없었다. 지난 주 병원에서 회사를 물어서 하우스 와이프라고 답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는데, 나는 왜 그 대답이 부끄러웠을까. 간호사가 그거 세상 터프한 직업이라고 말해주니 더욱 귀끝까지 열감이 느껴졌다.

*

요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스타트업의 영어 회화 서비스를 썼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멀쩡하게 좋은 학교 인문대를 나와 뉴욕에 살고, 외할머니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했다. 사고 싶은 책이 많은데 돈이 없단다. 너는 그래도 경력과 기술이 있잖냐고, 내가 지금부터 기술을 배워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보다, 네가 언어가 더 늘어 잡 마켓에 들어갈 수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어디나 문송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았다. 학부에선 문과 전공을 한 남편과 앉아 왜 문돌이들이 SQL 따위를 어려워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배우려 안 할까, 어떨 땐 엑셀 노가다질보다 나을텐데 얘기하다, 아예 노출된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없으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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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그 일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밥을 사먹는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여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렇게 온 지구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STEM 전공 아닌 사람은 밥벌기 점점 어려워지면 우린 뭘 해야할까. 여기나 한국이나 젠더 의식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데는 좋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한국은 사실 거꾸로 돌릴 것도 없이 원래 그 자리였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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