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나
고양이를 입양했다. 1살 반 ~ 2살, 사람 나이로 치면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미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걸로 보인다니 아줌마라고 남편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 고양이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손을 무척 반기던 암컷 고양이.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를 더 선호하지만, 우리는 덩치도 있고 이제 귀여운 맛도 덜 한데다 배에는 채 아물지 못한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는 이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수술 자국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나중에 서류를 자세히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임신 중간에 발견되어 낙태와 중성화를 (당)했다고.
길고양이 번식을 억제한다고 중성화를 시키는 것도 참 사람 멋대로지만, 이미 있는 아기를 지우기까지 하는 건 몰랐다. 서류에는 임신 때문에 건강을 너무 상해서 그랬다고 써있다. 하지만 검색해보니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에서 길고양이가 임신 30일 전에 발견되면 임신을 중단시키고 중성화시키는 정책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처음 며칠은 힘도 없고 아파 보여 걱정이 많았다. 자꾸 헛구역질을 하던 날에는 깜짝 놀라 남편과 24시간 하는 동물병원 응급실에도 갔다. 보호소에서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는 조용하던 애가,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엄청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다시 버려지는 걸로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 거 아니라고, 너 아픈 거 같아서 병원가는 거라고 계속 말을 걸었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리가 없다.
이제 2주 지나니 수술 자국도 다 아물고, 잘 먹고, 계단도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다닌다. 집에 있는 책장이나 수납장은 칸칸 다 들어가보고, 부엌에 뭔가 냄새가 난다 싶으면 바로 점프한다. 새벽이면 밥 달라고 어김없이 침대 주변에서 기척을 내더니 어제부터는 아예 내 가슴께로 올라와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은근히 아프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보다 훨씬 자주,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 말은 배운 적 없는, 게다가 한국어는 처음 들어봤을 미국 고양이는 그 고백의 순간에 눈을 꿈뻑 거리기도 하고, 사람 손이나 무릎에 박치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은 뭐라는 거냐, 는 표정으로 엄청 크게 하품한다.
어지간하면 사람 있는 공간에 같이 있고 싶어하고, 사람이 먹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한다.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호기심도 많아졌지만 아직 정수리랑 콧잔등에 남아있는 흉터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언 놈이 이랬냐고 언니가 가서 다 혼내줄게 하고 싶다. 이렇게 순하고 사람 손 많이 탄 애가 어떻게 길에서 버텼는지.
고양이가 오래 살면 스무 살이라니 나나가 세상을 떠날 무렵이면 나와 남편은 거의 환갑 근처일 것이다. 그 날까지 계속, 매일 매일 여러 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고양이의 오후처럼 심심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