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이별시키기

원더키디 대신 바이러스가 온 2020년, 어느새 12월 한 장이 남았다. 한국 팀과 이야기할 때면 벌써 몇 달 째 가택연금 상태라고 툴툴거렸지만, 우리집 포유류들은 반려묘 포함 모두 찐 집순이 집돌이들인지라 솔직히는 아주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외려 안 해주던 집들이 죄다 배달을 하니 기뻤다고 하면 올 해 장사하며 버티느라 힘들었던 사람들한테 너무하는 소리겠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살을 맞대던 감각, 음악과 조명이 있는 데서 남이 내려준 커피, 남이 해준 음식을 앞에 놓고 있을 때 환기되던 순간들, 집 앞 스타벅스까지 걸어 나갔다 들어오는 길의 공기 냄새, 출근과 퇴근의 공간 분리가 있을 때 분명했던 루틴이 자주 그리웠다. 하지만 부부가 모두 집에서 일할 수 있고 건사해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게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생각했다.

올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서재 이별시키기다. 처음 집을 사고 서재를 꾸밀 때는 커플이 양 옆에 나란히 앉아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는 알콩달콩함을 그렸다. 하지만 모두가 100% 리모트로 일하는 상황에서 그 그림은 낭만이었다. 비디오 콜을 하기 위해 둘 중 하나는 다른 방을 폰부스 삼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혹은 서로의 컨콜 배경으로 의도치 않게 카메오 출연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 중 몇 번은 몹시 위험하고 아찔했다.

결국 서재는 각방을 쓰기로 했다. 책장에서 다시 내 책을 골라 분리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미국으로 올 때, 나는 짐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책들을 스캔하거나 버렸고, 종이의 물성이 매우 중요한 책만 남겨서 들고 왔다. 그 때의 괴로움과 번거로움을 되새기며, 여기서도 책을 살 땐 가능하면 전자책을 사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서재 책장에서 내 지분율은 몹시 낮았다. 입시 때 풀던 정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반려인에 비해, 내 책장은 소박해졌고 때때로 나는 그게 속상했다. 애초에 이 M&A는 동등합병이 아니었다고 책들이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방을 분리하고 꾸미면서, 이제 종이책이 더 비싸고 자리도 차지하더라도,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그냥 사겠다 다짐했다.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더라도, 내 경력보다 그의 경력을 먼저 생각하는 일도 그만두리라 마음 먹었다. 화장실에 물 때가 끼거나 바닥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일 따위, 별 일 아니라고 최선을 다해 무시하고 나는 내 책상 앞에 가서 앉을 테다. 그리하여, 나는 올 해 혼자 일하다 팀으로 일하게 되었고, 조인트 책장과 통장이 아닌 내 책장과 통장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고, 새 별명이 생겼고, 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다들 집에 갖혀 있던 올 해, 내 세상은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반려인은 입버릇처럼 자길 빨리 은퇴시켜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그건 내 능력으로 무리지만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날을 만들어보자고 받아치게 되었다.

근데 반려인 말해보소, 우리 얼마가 있어야 은퇴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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