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 ICN

2년 2개월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그리웠던 관계와 공간은 내가 그렸던 것과 달랐다. 익숙한 모든 것들이 어색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나는 언젠가 서울로 돌아와 살게 될까, 아니면 이렇게 계속 드문드문 만나다가 잊혀져가게 될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영영 여기에 뿌리를 내리게 될 거라면,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만큼을 돌아가서 미국에서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먹어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릴 때라고 쉬웠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새 내게 가장 편한 공간은 고양이가 꼬리를 세워 나를 반기는 곳이다. 심심하고, 평화롭고, 초록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도시. 늘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던 나나는 사람 주변을 맴돌며 가까이 있고 싶어했다. 혼자 열흘 넘게 외롭고 심심했지.

늘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내 집이 아닌 부모님의 집이었다. 현실자각타이밍이 좀 늦었다.

 

또,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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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

3보 이상 승차 + 인도어 캣과 함께 하는 인도어 휴먼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니 몸이 무거워졌다. 일주일에 3번 리포머 위에 올라가려고 노력 중인데, 반려사람이 요새 로잉을 열심히 하는 게 자극이 되었다. 딴 것보다 구석에 모셔뒀던 리바운더의 재미를 알았다. 보기엔 쉬워보이는데 2분 넘어가면 배 땡기고 땀나고 힘들다. 한국에선 리바운더 쓰는 클래스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다른 유산소 운동보다 관절에 무리가 안 가서 좋다. 한국 들어가기 전 과연 정상 무게를 찾을 수 있을까… 아, 8월 말 / 9월 초 들어가려던 계획은 다시 밀려 10월 첫째 주, 둘째 주가 되었습니다. 반려사람 일이 바쁜데다 한국 너무 더워보여서 무서웠음.

  • 학교

첫 학기 좀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낮은 티어의 장학 대상이 되긴 했다. 이번 학기 등록금 30% 감면. Lambda나 디지털대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받은 대학 교육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피어가 한 데 모여있을 때 주고 받은 영향, 그 때 만난 관계가 과연 1년 등록금 천만원에 육박하는 가치가 있었던 걸까… 어쨌든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그리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사랑의 하나님”을 이야기 하던 채플, 랜더링 하다가 뻑하면 사망하시던 실습실 컴퓨터, 과제 제출 전날 말도 안되는 시간에 전화해서 귀찮게 해도 잠결에 대답해 주시던 선생님 목소리, 헬렌관 스파게티… 같은 걸 떠올리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사업자등록/개발

여기서 외주를 위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용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아직 세금 신고를 안 해봐서 이게 잘 한 결정인가 애매한데 설마하니 홈텍스보다 힘들겠어.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뭘 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전적인 일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십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만들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Lambda 끝내고 나서는 나는 프론트엔드가 더 취향이구나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데이터 분석할 때도 분석 자체보다 시각화가 좋았던 것 같고. 그나저나 아재들이 아무리 JavaScript 무시해도 뭔가가 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나나찡

반년을 같이 산 나나는 의사 표현이 확실해졌다. 싫은 거 싫다고 애애옹! 하고 이제 내 눈치도 안 본다. 길에서 살 때 어디서 맞고 다녔을까 안쓰러웠는데 막상 마당에 침입한 길고양이나 산책냥이들을 대하는 나나의 자세를 보니, 아아… 얘가 그동안 우릴 엄청 봐줬구나 깨달음이 왔다. 이건 완전 야수 또는 맹수의 모습. 발톱 깎을 때 그 정도로 끝난 건 정말 많이 협조적이었던 거였다. 여튼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한 건 참 잘 한 결정이었다. 다른 생명이 나를 우울에서 꺼내주었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나나찡.

오늘도 기승전 고양이.

근황

Lambda School – Computer Science Major

12월 코호트에 합격해서 수업을 듣고 있다. Lambda School은 Y 컴비네이터 출신으로, CS와 AI 코스를 오퍼한다. 엔지니어로 취업하기 전까지는 수업료 낼 일 없다는 데 혹했다.

스타트업으로선 좀 아쉽다. 실행력 엄청 좋은데, 제품은 없다. 모든 수업은 zoom으로, Q&A는 slack을 사용한다. 서부 시간 오전 8시 – 오후 5시까지 아침에 한 시간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zoom으로 수업을 하고, 페어/개인 프로그래밍 시키고, daily standup 하고. 소소한 장치들을 계속 넣었다 뺐다 하면서 수업 방식을 두고 실험을 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쉬운 점은

  • 내 경우 slack의 실시간성이 몰입을 방해한다. 정신이 없다.
  • 인강에 익숙한 한국 살암 잠깐 놓친 부분 잠시 돌려 보기도 해야하고, 1.5배속으로 볼 수도 있어야 하는데, 굳이 왜 오프라인 강의도 아닌데 실시간으로만 해야하는지 의문.
  • 자막 있는 강의에 익숙해 있다가 없이 보려니 순간 순간 못 알아 들을 때가 있다.
  • 교수자가 라이브 코딩하다 안 풀릴 때 삽질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우 답답.
  • 웹페이지 소개에는 코드 리뷰를 꼼꼼히 할 것 처럼 써놓았지만 막상 제출한 코드를 누군가 시간 내서 봐주는 것 같지 않다. TA가 looks good 외치고 끝.
  • 제일 힘든 점은 8시부터 시작하는 거. 저혈압 인간에게 오전 시간은 힘들다.

좋은 점은 일반 대학 커리큘럼과 비교하면 대학은 여러 과목의 진도를 한 학기/16주에 펼쳐놓지만, 여긴 소주제를 한 주에 끝내버리는 것. 실시간인 게 단점이자 또 장점이기도 한데, 8 to 5 책상 앞에 앉혀놓으니 뭐라도 하게 된다.

SDU – Computer Engineering 전공 3학년 편입

한국에 있었으면 방통대를 생각했을 텐데, 시험기간에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원격대학들을 알아봤다. 미국 대학 대비 가격이 워낙 훌륭했고, 그동안 여기 저기서 MOOC 수업들을 많이 들어봤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엔 원격 대학교가 이미 있구나 싶어 비교해 보고 싶기도 했다.

한 달 수업 들어본 것만으로 평가하기 좀 이르지만 기대보다 수업 내용이 좋다. SDU의 정돈된 커리큘럼과 Lambda의 약간 정신없는 활발함이 좀 섞이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세라 수업별 포럼 같은데서 서로 질문하고 답해주는 것 같은 적극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2주 동안의 윈도우를 주고 그 안에 한 주차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한꺼번에 진도를 빼버릴 수 없다. 물론 기말 다 되어서 몰아보기도 할 수 없다. 학부니까 총 6과목을 따라가려면 꼬박꼬박 매일 한 과목씩은 들어야 하고, 보통 3주마다 퀴즈나 과제가 있어서 전공으로만 채우니 꽤 빡빡하다. 3학기 안에 끝내는 게 목표.

다만 교수님들 동영상에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거 진심 어색하다. 이 바닥에서 넘나 보기 힘든 수트 차림… 수강 신청할 때 의도적으로 여자 교수님 과목을 찾아 넣어서 그래도 2과목은 여자 선생님인 거 좋다. (람다엔 한 명도 없다). 문과에 여대를 나와서, 학교마다 여자 교수님들이 이렇게 적은지, 더군다나 STEM 분야에 여자 교수님이 이렇게 찾기 힘든 존재인지 전혀 감이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STEM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의 2/3가 x파일의 스컬리를 롤모델로 삼아서 스컬리 이펙트라고도 한다는데,  미디어나 학교에서, 눈에 잘 띄는 롤모델의 존재란 너무 중요하다.

해외통신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해외통신원을 하게 되었다. 글값이 말도 안되게 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생각보다 한 달에 양 쪽에 한 개씩, 두 꼭지 글 쓰기도 쉽지 않다. 허구헌날 글을 쳐내고 마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기자들/ 다양한 포맷의 글쟁이들이 대단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둘 다 네이버 까페와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쓴다는 거다. 허허 너무나 말도 안되게 느껴지지만 나름 적응 중. 그래도 예전엔 공무원들 네이버 같은 외부 이메일 주소 쓰는 것도 많이 봤는데, id@korea.kr 로 통일한 듯 보여 말끔해 보였다.

초보 집사

집사의 길을 걷고 있다. 보스턴 출장가는 반려인을 따라가서 놀다 왔는데, boarding 맡겼다가 찾아왔더니 아주 서러움이 폭발했다. 잘 울지 않는 애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야옹 야옹 말을 하는데, 날 그런 데다 놓고서 어디 갔었냐고 하는 것 같다.

TV나 책 보다가 울고 있으면, 슬퍼하는 걸 안다. 무릎으로 와서 앉거나 내 살에 자기 살을 대고 앉는다. 함께 사는 건 이런 거라고, 서로 위로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는 고양이. 내가 얘한테도 위로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캔따개는 되고 있겠지.

 

 

고양이 나나

고양이를 입양했다. 1살 반 ~ 2살, 사람 나이로 치면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미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걸로 보인다니 아줌마라고 남편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 고양이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손을 무척 반기던 암컷 고양이.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를 더 선호하지만, 우리는 덩치도 있고 이제 귀여운 맛도 덜 한데다 배에는 채 아물지 못한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는 이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수술 자국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나중에 서류를 자세히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임신 중간에 발견되어 낙태와 중성화를 (당)했다고.

길고양이 번식을 억제한다고 중성화를 시키는 것도 참 사람 멋대로지만, 이미 있는 아기를 지우기까지 하는 건 몰랐다. 서류에는 임신 때문에 건강을 너무 상해서 그랬다고 써있다. 하지만 검색해보니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에서 길고양이가 임신 30일 전에 발견되면 임신을 중단시키고 중성화시키는 정책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처음 며칠은 힘도 없고 아파 보여 걱정이 많았다. 자꾸 헛구역질을 하던 날에는 깜짝 놀라 남편과 24시간 하는 동물병원 응급실에도 갔다. 보호소에서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는 조용하던 애가,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엄청 서럽게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다시 버려지는 걸로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 거 아니라고, 너 아픈 거 같아서 병원가는 거라고 계속 말을 걸었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리가 없다.

이제 2주 지나니 수술 자국도 다 아물고, 잘 먹고, 계단도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다닌다. 집에 있는 책장이나 수납장은 칸칸 다 들어가보고, 부엌에 뭔가 냄새가 난다 싶으면 바로 점프한다. 새벽이면 밥 달라고 어김없이 침대 주변에서 기척을 내더니 어제부터는 아예 내 가슴께로 올라와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은근히 아프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보다 훨씬 자주,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 말은 배운 적 없는, 게다가 한국어는 처음 들어봤을 미국 고양이는 그 고백의 순간에 눈을 꿈뻑 거리기도 하고, 사람 손이나 무릎에 박치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은 뭐라는 거냐, 는 표정으로 엄청 크게 하품한다.

어지간하면 사람 있는 공간에 같이 있고 싶어하고, 사람이 먹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한다.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호기심도 많아졌지만 아직 정수리랑 콧잔등에 남아있는 흉터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언 놈이 이랬냐고 언니가 가서 다 혼내줄게 하고 싶다. 이렇게 순하고 사람 손 많이 탄 애가 어떻게 길에서 버텼는지.

고양이가 오래 살면 스무 살이라니 나나가 세상을 떠날 무렵이면 나와 남편은 거의 환갑 근처일 것이다. 그 날까지 계속, 매일 매일 여러 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고양이의 오후처럼 심심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2016/2017

해가 바뀐지 며칠 지났다. 16년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 결혼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한국 들어가 혼인성사는 다시 할 계획인데, 허전해 할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특히 어째 엄마보단 아빠가 많이 쓸쓸해 하는 것 같다.

결혼식이란 건 준비하기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는데, 작고 조용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 집에서 가까웠던 드레스샵에 웨딩드레스를 주문했고, 시애틀 꽃시장에서 전날 꽃을 사다가 부케랑 부토니에를 만들었다. 장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반지는 삼청동 누니주얼리에서 맞췄고, 한 달 정도 지나야 완성된대서 출장오는 후배 편에 받았다. 포토그래퍼가 젤 막막했는데, 한국의 숨고같은 사이트인 Thumbtack을 통해 사진으로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이를 찾았고, 리뷰가 꽤 좋더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현진이가 와줄 수 있어서 고마웠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좀 불안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랬을까 싶다. 한 시간 예식보다 그 이후 같이 살아내는 과정이 중요할텐데, 그 이벤트 자체에 너무 진을 빼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작게 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것 많고 힘들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면서도 남들과 좀 뭘 다르게 하고 싶을 때, 걱정하지 말고 내 하고픈 대로 할테다. 그리고 멀리서도 선물이랑 축의 보내주신 분들을 보며 나는 이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고 있었나 반성했다.

 

  • 달팽이 집

엄마아빠 집에서 짐을 홀랑 빼서 이사를 했는데, 미리 정리한다고 많이 버렸는데도 받고 보니 또 버릴 게 있었다. 심지어 아직도(!) 새로 버릴 게 나온다.

미리 다 덜어냈으면 이사 비용이 덜 들었을텐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더 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긴 하다.

미니멀리스트를 다룬 책이 아무리 유행이래도 내가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정기적으로 짐을 덜어내는 걸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 1 & 0

신용도 1, 부채 0인 상태가 된 게 2016년 봄이다. 끝이 날까 했는데 끝났다. 막상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안 믿기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다. 지나고 나면 배운 게 많았는데, 들고 있을 땐 무거웠다. 살면서 다시 달달한 일도 쓰고 떫은 일도 오겠지. 다 지나가는 걸 경험했으니 그 때는 더 덤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건강


여름에 대상포진이 재발했었다. 어릴 때랑은 다르게 무리하면 안되고 제 때 안 자고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 탈난다. 가끔 그 밤샘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내 체력의 한계를 알고 조심할 점들을 찾아 스스로를 케어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여기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다시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다.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칭찬이 후해서 기분이 좋은데 움직일 때 디테일을 안 잡아주니 재미가 없다. ClassPass라도 잘 써보는 걸로.

필라테스 인스트럭터 수업 들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서울 들어가서 시험을 볼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싶다. 이 목표는 미완인채로 2017년으로 넘어왔다.

 

올해는 집 사서 이사하고 이직 성공만 해도 훌륭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업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지금의 나에겐 없는 것 같다. 이 평범하고 안온한 상태가 참 좋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 놀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늘 그렇듯 좀, 불안해하며 새해 시작.

옛날 생각 많이 하면 늙는 거라던데

– 2008년 M본부에서 비즈스파크 런치할 때는 startup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며 그냥 한글로 스타트업이라고 쓸까 벤처기업이라고 쓸까 초기기업으로 할까 고민했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일간지에서도 쓰고 있다. 국어야 미안해.

– 그 해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몇 백개 테크 회사들에게, 매일 한 통씩만 걸면 돼, 하고 다 콜드콜을 걸었다. 주말엔 쉬어야 하니까 가끔은 두 통 걸지 뭐. 바보같이 일한다고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TM은 벤더 쓰라며. 그 땐 겨우 백개 단위였는데, 요샌 연 한 2천개는 생기지 않을랑가.

– 포트폴리오사들에게 비즈스파크 소개해달라며 처음 만난 게 본이었다. 테헤란로 어드멘가의 스벅이었던 듯. M본부가 뭐하러 이런 걸 하냐고 단속용 DB쌓는 거 아니냐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시던 강이사님 표정이 기억난다.

– 블루홀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규모에서 쓰기엔 훨씬 많은 직원들이 라이센스를 써야해서, 여긴 해줘도 괜찮다고 본사 담당 설득하느라 진 뺐었다. 그거 명수 제한 풀어줬다 영업 쪽에서 엄청 다굴 당했던 기억도 나고

– 테크 인더스트리에서 ‘조직’의 초기를 케어하는 게 비즈스파크였으면, ‘사람’의 초기를 케어하고 육성하는 건 드림스파크랑 이매진컵 등등 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이매진컵 >> 삼성멤버십 >> 삼전의 테크트리를 탔다. 가끔 나오는 창업 건은 아주 예외.

옛날 미투를 떠올리게 하는 서비스, 어라운드를 만든 신상이를 보며 정말 사람도 기업도 크는구나, 사람과 기업의 초기단계를 케어해야 생태계가 풍부해지는 건 맞는 방향같다 회상해본다.

그 때도 M본부 사람들은 영어공부를 해야하는데, EBS 영어지문을 외우고 있는 바보짓을 했다. 그 와중에도 그러나 바보짓이라규 괴로워하느니 지문을 잘 외우면 영어가 늘기도 했다며…

– 신상이에게 나름 오랜 시간, 관찰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1인 가구로 가득한 도시는 외롭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아직 신이 났고 힘찼다. 몇 년 더 해보면 그도 다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지.

– 나는 내가 먼저 일을 벌린 후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력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난 그 불안의 무게를 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 결론은 딱히 없다. 그 많던 몇 백개의 회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단속 나오는 거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이 많았는데, 3년을 채우고 졸업한 곳들이 몇 퍼센트나 되려나. 3년 살아남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하면 엄청 싸했었다.

살아남아 다시 이야기하자.

오늘의 기도

내일 미팅 준비해야하는데 자꾸 회상인지 회고인지를 하게 되어 곤란데스요…

나는 이제 좀비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옛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더랬는데, 예상대로 되었다. 요즘엔 순간순간, 우왕 이 아저씨 이제 좀비킹 왕좌를 만들어 앉혀야겠다 한다. 8년째, 여전히 나는 개인의 성장 그래프 중에, 이 인간이 그리는 모양새 같은 건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엄청난 기울기의 하키스틱 그로스.

며칠 전이었나,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건 줄 미리 알았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너무 격하게 끄덕거렸다. 나도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뭣도 모르고 하라고, 하라고, 이상한 뽐뿌질 같은 건 안했을 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꾸 누웠을 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건 일어난 일보다 일어날 일이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어느새 삼십대 초반이 되어 결혼을 한단다.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지금 좀비씨의 나이가, 내가 온통 어른인 척 하고 앉았었던 카이로나 바르샤바에서의 내 나이보다 많고나. 어쩌면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청년을, 사랑하고 믿어주고 함께하기로 결정한 그 아가씨가 너무 고마운데, 고맙다고 말도 못 붙여봤다.

눈에 보이게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을 떠올린다. 또는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계신지도 잘 모르시면서 도와주신 분들도 떠올린다. 오늘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 우리가 더 긴 호흡으로 이루고 싶어한 것들과 지키고 싶어한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배우는 사람

지리한 버팀의 시기에, 외주 클라이언트로 만난 분이 있다. 영리법인이 아닌데도 일해 본 어떤 기업보다 스마트한 조직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봉사하시는 거였고, 당신이 하시는 사업은 따로 있는 사장님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다른 일을 소개해주셨고, 당신도 이걸 배워보고 싶으시다며 자주 전화하시고 찾아오셔서 내 시간을 빼앗고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딸래미가 학교 후배인데다 하필 또 딸래미 이름은 나와 정확하게 일치. 나이도 있으셔서 짜증은 날지언정 거절하기는 어려운 분이었다.

한 달쯤 잠잠하시다 싶었는데, 오늘 보여주신 작업 결과물들이 놀라웠다. 딸 통해서 이대 도서관에 있는 관련 책들은 빠짐없이 빌려보셨다고 했다.

배우는 자세는 나이가 먹고, 고집이 생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록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아저씨가 한참 날 괴롭히실 때, 나는 이 분이 하실 수 없는 일에 애쓰신다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먹어 생판 모르던 걸, 친절하지 않은 목소리 들어가며 묻고 또 물어 배울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시다고 앞에서 대놓고 칭찬해 드렸다. 진심으로 감동했다. 거절 못하길 참 잘했다.

구라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유명세를 탄다. 퍼블릭 스피치가 점점 느는 걸 관찰하며 대견해한다.

요 며칠 소셜 미디어에서 많이 공유되는 전 세대 창업가의 스피치에, 친구분들이 ‘많이 늘었네’라고 하시는 걸 보며 아 내게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는 사람도 친한 사람들에겐 그냥 ‘그 사람’일 뿐이겠구나 생각한다. 나한텐 아직도 소년 같고 점점 얼굴 팔리고 바쁘게 사는 게 안쓰럽기만 한 그대들이, 누군가에겐 큰 성공을 한 걸로 보이기도 하겠구나. 무슨 일이 우리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 놓이던, 그냥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나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 다 만들어 줄 수 있다던 구라는, 3년이 지나 이제 이루어진 셈. 한국어가 서툰 멤버가 ‘주말동안 싸웠어요, 근데 이겼어요’ 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 참 좋았다. 내가 욕심이 아닌 사랑을 따를 수 있기를, 우리는 늘 그래왔듯 많이 부족해도 계속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편하지 않아

회사를 이사했다. 햇수로 7년째, 익숙한 삼성동을 떠나 분당으로 왔다.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6시-6시 20분 사이에 집에서 나서면 7시 근처에 도착한다.

어찌보면 내게 세상 불편하게 느껴졌던 일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 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

아직 작심3일째지만 생각보단 수월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평상시보다 풀 메이크업으로 현관을 나선다.

(아님 늙어서 잠이 줄어드는 중이거나??)

누가 이 시간까지 오라고 강제했으면 못하거나 또는 안하거나 했겠지.

예전에 매일 7시면 사무실에 나와 있던 보스는 우리가 나타나기까지 매우 심심하고 외로웠겠구나 생각도 하고

새벽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올빼미로 삼십년 넘게 살아온 인간에겐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끔 나를 옮겨볼 필요가 있다.

해 뜨면 움직이고 해 지면 자는 삶(!)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고, 하루치 할 일들이 9시 이전에 이미 끝날 때가 많다는 것에 놀란다.

아저씨들이 달보면서 출근하셔서 사람들을 들볶을 준비를 하시던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