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

해가 바뀐지 며칠 지났다. 16년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 결혼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한국 들어가 혼인성사는 다시 할 계획인데, 허전해 할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특히 어째 엄마보단 아빠가 많이 쓸쓸해 하는 것 같다.

결혼식이란 건 준비하기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는데, 작고 조용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 집에서 가까웠던 드레스샵에 웨딩드레스를 주문했고, 시애틀 꽃시장에서 전날 꽃을 사다가 부케랑 부토니에를 만들었다. 장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반지는 삼청동 누니주얼리에서 맞췄고, 한 달 정도 지나야 완성된대서 출장오는 후배 편에 받았다. 포토그래퍼가 젤 막막했는데, 한국의 숨고같은 사이트인 Thumbtack을 통해 사진으로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이를 찾았고, 리뷰가 꽤 좋더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현진이가 와줄 수 있어서 고마웠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좀 불안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랬을까 싶다. 한 시간 예식보다 그 이후 같이 살아내는 과정이 중요할텐데, 그 이벤트 자체에 너무 진을 빼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작게 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것 많고 힘들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면서도 남들과 좀 뭘 다르게 하고 싶을 때, 걱정하지 말고 내 하고픈 대로 할테다. 그리고 멀리서도 선물이랑 축의 보내주신 분들을 보며 나는 이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고 있었나 반성했다.

 

  • 달팽이 집

엄마아빠 집에서 짐을 홀랑 빼서 이사를 했는데, 미리 정리한다고 많이 버렸는데도 받고 보니 또 버릴 게 있었다. 심지어 아직도(!) 새로 버릴 게 나온다.

미리 다 덜어냈으면 이사 비용이 덜 들었을텐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더 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긴 하다.

미니멀리스트를 다룬 책이 아무리 유행이래도 내가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정기적으로 짐을 덜어내는 걸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 1 & 0

신용도 1, 부채 0인 상태가 된 게 2016년 봄이다. 끝이 날까 했는데 끝났다. 막상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안 믿기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다. 지나고 나면 배운 게 많았는데, 들고 있을 땐 무거웠다. 살면서 다시 달달한 일도 쓰고 떫은 일도 오겠지. 다 지나가는 걸 경험했으니 그 때는 더 덤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건강


여름에 대상포진이 재발했었다. 어릴 때랑은 다르게 무리하면 안되고 제 때 안 자고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 탈난다. 가끔 그 밤샘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내 체력의 한계를 알고 조심할 점들을 찾아 스스로를 케어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여기서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다시 찾아야하는데 쉽지 않다. 동네 필라테스 스튜디오는 칭찬이 후해서 기분이 좋은데 움직일 때 디테일을 안 잡아주니 재미가 없다. ClassPass라도 잘 써보는 걸로.

필라테스 인스트럭터 수업 들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서울 들어가서 시험을 볼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싶다. 이 목표는 미완인채로 2017년으로 넘어왔다.

 

올해는 집 사서 이사하고 이직 성공만 해도 훌륭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업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지금의 나에겐 없는 것 같다. 이 평범하고 안온한 상태가 참 좋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 놀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늘 그렇듯 좀, 불안해하며 새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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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많이 하면 늙는 거라던데

– 2008년 M본부에서 비즈스파크 런치할 때는 startup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며 그냥 한글로 스타트업이라고 쓸까 벤처기업이라고 쓸까 초기기업으로 할까 고민했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일간지에서도 쓰고 있다. 국어야 미안해.

– 그 해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몇 백개 테크 회사들에게, 매일 한 통씩만 걸면 돼, 하고 다 콜드콜을 걸었다. 주말엔 쉬어야 하니까 가끔은 두 통 걸지 뭐. 바보같이 일한다고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TM은 벤더 쓰라며. 그 땐 겨우 백개 단위였는데, 요샌 연 한 2천개는 생기지 않을랑가.

– 포트폴리오사들에게 비즈스파크 소개해달라며 처음 만난 게 본이었다. 테헤란로 어드멘가의 스벅이었던 듯. M본부가 뭐하러 이런 걸 하냐고 단속용 DB쌓는 거 아니냐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시던 강이사님 표정이 기억난다.

– 블루홀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규모에서 쓰기엔 훨씬 많은 직원들이 라이센스를 써야해서, 여긴 해줘도 괜찮다고 본사 담당 설득하느라 진 뺐었다. 그거 명수 제한 풀어줬다 영업 쪽에서 엄청 다굴 당했던 기억도 나고

– 테크 인더스트리에서 ‘조직’의 초기를 케어하는 게 비즈스파크였으면, ‘사람’의 초기를 케어하고 육성하는 건 드림스파크랑 이매진컵 등등 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이매진컵 >> 삼성멤버십 >> 삼전의 테크트리를 탔다. 가끔 나오는 창업 건은 아주 예외.

옛날 미투를 떠올리게 하는 서비스, 어라운드를 만든 신상이를 보며 정말 사람도 기업도 크는구나, 사람과 기업의 초기단계를 케어해야 생태계가 풍부해지는 건 맞는 방향같다 회상해본다.

그 때도 M본부 사람들은 영어공부를 해야하는데, EBS 영어지문을 외우고 있는 바보짓을 했다. 그 와중에도 그러나 바보짓이라규 괴로워하느니 지문을 잘 외우면 영어가 늘기도 했다며…

– 신상이에게 나름 오랜 시간, 관찰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1인 가구로 가득한 도시는 외롭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아직 신이 났고 힘찼다. 몇 년 더 해보면 그도 다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지.

– 나는 내가 먼저 일을 벌린 후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력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난 그 불안의 무게를 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 결론은 딱히 없다. 그 많던 몇 백개의 회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단속 나오는 거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이 많았는데, 3년을 채우고 졸업한 곳들이 몇 퍼센트나 되려나. 3년 살아남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하면 엄청 싸했었다.

살아남아 다시 이야기하자.

오늘의 기도

내일 미팅 준비해야하는데 자꾸 회상인지 회고인지를 하게 되어 곤란데스요…

나는 이제 좀비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옛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더랬는데, 예상대로 되었다. 요즘엔 순간순간, 우왕 이 아저씨 이제 좀비킹 왕좌를 만들어 앉혀야겠다 한다. 8년째, 여전히 나는 개인의 성장 그래프 중에, 이 인간이 그리는 모양새 같은 건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엄청난 기울기의 하키스틱 그로스.

며칠 전이었나,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건 줄 미리 알았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너무 격하게 끄덕거렸다. 나도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뭣도 모르고 하라고, 하라고, 이상한 뽐뿌질 같은 건 안했을 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꾸 누웠을 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건 일어난 일보다 일어날 일이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어느새 삼십대 초반이 되어 결혼을 한단다.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지금 좀비씨의 나이가, 내가 온통 어른인 척 하고 앉았었던 카이로나 바르샤바에서의 내 나이보다 많고나. 어쩌면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청년을, 사랑하고 믿어주고 함께하기로 결정한 그 아가씨가 너무 고마운데, 고맙다고 말도 못 붙여봤다.

눈에 보이게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을 떠올린다. 또는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계신지도 잘 모르시면서 도와주신 분들도 떠올린다. 오늘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 우리가 더 긴 호흡으로 이루고 싶어한 것들과 지키고 싶어한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배우는 사람

지리한 버팀의 시기에, 외주 클라이언트로 만난 분이 있다. 영리법인이 아닌데도 일해 본 어떤 기업보다 스마트한 조직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봉사하시는 거였고, 당신이 하시는 사업은 따로 있는 사장님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다른 일을 소개해주셨고, 당신도 이걸 배워보고 싶으시다며 자주 전화하시고 찾아오셔서 내 시간을 빼앗고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딸래미가 학교 후배인데다 하필 또 딸래미 이름은 나와 정확하게 일치. 나이도 있으셔서 짜증은 날지언정 거절하기는 어려운 분이었다.

한 달쯤 잠잠하시다 싶었는데, 오늘 보여주신 작업 결과물들이 놀라웠다. 딸 통해서 이대 도서관에 있는 관련 책들은 빠짐없이 빌려보셨다고 했다.

배우는 자세는 나이가 먹고, 고집이 생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록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아저씨가 한참 날 괴롭히실 때, 나는 이 분이 하실 수 없는 일에 애쓰신다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먹어 생판 모르던 걸, 친절하지 않은 목소리 들어가며 묻고 또 물어 배울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시다고 앞에서 대놓고 칭찬해 드렸다. 진심으로 감동했다. 거절 못하길 참 잘했다.

구라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유명세를 탄다. 퍼블릭 스피치가 점점 느는 걸 관찰하며 대견해한다.

요 며칠 소셜 미디어에서 많이 공유되는 전 세대 창업가의 스피치에, 친구분들이 ‘많이 늘었네’라고 하시는 걸 보며 아 내게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는 사람도 친한 사람들에겐 그냥 ‘그 사람’일 뿐이겠구나 생각한다. 나한텐 아직도 소년 같고 점점 얼굴 팔리고 바쁘게 사는 게 안쓰럽기만 한 그대들이, 누군가에겐 큰 성공을 한 걸로 보이기도 하겠구나. 무슨 일이 우리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 놓이던, 그냥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나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 다 만들어 줄 수 있다던 구라는, 3년이 지나 이제 이루어진 셈. 한국어가 서툰 멤버가 ‘주말동안 싸웠어요, 근데 이겼어요’ 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 참 좋았다. 내가 욕심이 아닌 사랑을 따를 수 있기를, 우리는 늘 그래왔듯 많이 부족해도 계속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편하지 않아

회사를 이사했다. 햇수로 7년째, 익숙한 삼성동을 떠나 분당으로 왔다.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6시-6시 20분 사이에 집에서 나서면 7시 근처에 도착한다.

어찌보면 내게 세상 불편하게 느껴졌던 일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 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

아직 작심3일째지만 생각보단 수월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평상시보다 풀 메이크업으로 현관을 나선다.

(아님 늙어서 잠이 줄어드는 중이거나??)

누가 이 시간까지 오라고 강제했으면 못하거나 또는 안하거나 했겠지.

예전에 매일 7시면 사무실에 나와 있던 보스는 우리가 나타나기까지 매우 심심하고 외로웠겠구나 생각도 하고

새벽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올빼미로 삼십년 넘게 살아온 인간에겐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끔 나를 옮겨볼 필요가 있다.

해 뜨면 움직이고 해 지면 자는 삶(!)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고, 하루치 할 일들이 9시 이전에 이미 끝날 때가 많다는 것에 놀란다.

아저씨들이 달보면서 출근하셔서 사람들을 들볶을 준비를 하시던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꾸준함에 대하여

1.

임 여사가 대표님이 된지 일 년이 됐다. 나는 내일 모레 환갑을 앞둔, 나와 동생을 낳아 키워내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주부였던 여자를 과소 평가했다. 시작할 무렵 그녀는 참 어리버리했다. 임 여사님이 손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안절부절했었다.

임 여사님들은 친절하지 않은 조카 혹은 딸년에게 키워드 광고 하는 법도 배우고, 블로그 하는 법도 배우셨다. 학습 속도가 빨랐다. 임여사는 신나했다. 이 불경기에 엄청난 수입은 아닐지언정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걸. 피곤할 때도 많다. 하루 종일 있었던 모든 일을 중계하고 싶어하시니까. 좋은 손님, 나쁜 손님, 이상한 손님 이야기는 화수분처럼 끝도 없었다.

오늘 우연히 손님 전화를 받는 걸 들었는데, 어머 임 여사 여우 다 됐네. 적당히 사람 안달나게, 세련되게, 물어봐야 하는 정보들 챙겨가면서 전화 참 잘 받더라는. 아 기특하기 짝이 없다.

 

2.

학생일 때는 이런 10년 후를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앵커 멘트를 하고 있는 후배는, 가장 예쁘장하게 태어난 애가 아니라 가장 묵묵했던 애다. 이 친구가 처음 가서 앉은 자리는, 아 그녀가 가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기자상을 탔다기에 찾아 본 뉴스. 리포트하는 정치부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그럴 듯 했다. 난 무용가의 딸인 그녀가 저 거친 삶을 지속하기엔 너무 여리고 가늘다고 걱정했다. 한편 딱 보기에도 그 일을 위해 태어난 듯 어울렸던 친구는, 엉뚱한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엉뚱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3.

엄마를 보면서, 친구들을 보면서 한 방향으로 묵묵한 힘이 쌓이면 대단해 지는 걸 본다. 경력 단절이 길어도 내 어미만큼 30년씩이나 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직업의 미래가 불확실할 지언정 얼굴 파는 직업만 할까.

그녀들만큼만 꾸준하면, 뭐든 되겠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내 어미를 포함하여, 다음 10년 뒤에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임 여사는 아마도, 계속 늙지 않고 뭔가를 배우고 있을 거다.

목표와 불안을 나누며

점심 때 Fast Track Asia에서 한 시간 헛소리를 하고 왔는데, 간단히 덱을 준비했다가 쓰지 못하니 머리가 좀 엉켰다. 이미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겪어보신 분들과 달리, 뭐 할 말이 있어야 말이지.

준비하면서 크게 두 가지 해야지 생각했다. 첫째,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 팀 소개하기. 여성적인 조직문화를 뭐라고 정의할 지는 애매하지만, 지난 주 같은 시간에 세션을 했다는 친구가 대놓고 “너희 회사엔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둘째, 지난 2년간 경험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 가능하면 개인적인 맥락에서 나누기.

조직의 문화나 리더십 스타일은 각각에 맞는 옷이 있고 뭐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난 우리 회사의 습관이나 문화나 리더십 스타일이 좋고, 목표와 불안을 모두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나중에 조인한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다. 물어봐야할 듯). 회사 문화 말하면서는 주로 폴 빙의를 해보려고 애썼는데, 사람들 체크인 시키고, 기대치 듣고, 만족도 점수도 받았다. ㅋ

개인적으로 느낀 점들은 이런 얘기들 했다.

  • 사람은 다 불안하고 약하다. 또 사람들은 각기 다 다르다. 이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나만 불안하고 에너지 고갈되는 거 아니다. 다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두려운데 센 척 할 뿐이다. 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팀 안에서는 서로의 불안을 받아주자. 그리고 사람들이 동기 부여되는 방식은 각자마다 다르다는 거 잊지 말자.
  • 성공을 주의해서 해석하자. 성공 요인은 대부분 사후 해석 혹은 재가공이고,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많지만, 그 성공을 함께 만든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사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리고 남의 성공을 따르지 말자. 내 성공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게 먼저다. 돈 많이 벌어도 그 과정에서 내가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잃거나 상처주면 성공했다고 하기 어렵고, 내가 성공했다고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사람들도 가까이에서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젤 소중한 한 명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삶일 수 있다.
  • 편한 지대를 벗어나자. 나를 성장시키는 건 일할 때 편치 않고 불편한 사람, 불편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작은 회사일 수록 나랑 비슷하고, 같은 학교 나오고 비슷한 경험 가진 사람들로 채우기 쉬운데, 할 수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고, 많이 그러나 잘 싸우고 불편해하자.
  • 말하고 듣는 걸 일로 하자. 팀 멤버들과 정기적으로 1:1 하고 그 말을 “잘” 듣고 “잘” 말하는 걸 업무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그런 거 챙길 여유가 없는 것 서로 뻔히 알지. 필요하면 지금 나랑 잠깐 이야기할 수 있냐고 보스에게 말하고, 우리 회사 식으로 하면, 지금 너무 힘든데 저 잠깐 스팟코칭해주실 수 있냐고 시간 뺏으면 된다.

때로 지치고 힘들며 이 길이 맞나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나를 위해 기도했다. 목표와 불안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도.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물리적으로 닿지 못하고 나누는 교감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시집가서 나와 같은 시간에 살지 않는 친구가 보낸 사진을 열어 본다. 나는 네 살림을 같이 골라주지도 못하고 네 아이에게 일년에 한 번 이모 노릇 하기도 쉽지 않겠지. 시차도 한 시간 뿐이고 한국도 자주 들어오지만 역시 만나기 쉽지 않은 선배 언니는 사진 속 얼굴을 칭찬한다.

반대로 물리적으로 닿아있어도 언제 한 번 제대로 생각이나 감정을 나눠보지 못하는 사이도 있지 않을까 위안한다. 그냥 다 모여 살았어도 먹고 살기에 바빠 자주 보지 못했을 거라 위로한다.

헤어지고 멀어지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기술이 발전하여 우린 서로가 먹은 음식의 사진을 보고 그 날 있던 일을 바로 알 수 있게 되었지만…다들 서울에 살란 말야. 나빠.

더 큰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옛날 광고는 막상 이루어지니 쓸쓸하였다.

겸손하게 달을 보자고 적어보는 일기

1.

테크 인더스트리엔 구시대적 마케팅 컨셉을 가진 사람/조직이 많은 것 같다. 고객이 원하는 걸 고민해서, 빈 부분을 만족시키는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다양한 지점에서 고객과 만날 수 있게 하고, 마지막으로 이 녀석이 왜 좋은지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소비재에 비하면 좀 구시대적으로 “우리가 엄청난 기술로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놓은 후 잘 “포장”하면 된다고 여기는 경향. 점점 기술도 일상재가 되어가고 패션이 되어가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전지전능하게 새로운 세계를 짓는 창조주 놀이 그만하고 겸손해지자는 것. “마케팅이 싫어요”라니, 잊지 못할 거다.

2.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자. 손가락 끝 말고. 여러 다양한 지표들은 손가락 끝이지 달이 아니야. 광고주에게 처음부터 다른 지표를 잡았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반응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유명세나 돈이나 화려함도 마찬가지. 원래 보려던 달이 뭐였나 자주 되새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그나저나 그렇게 돈 벌면 좋은가. 한 겹 까보니 생각보다 너무 빈껍데기여서 충격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