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와 함께 본 조이

지인이 아닌 분들이 이 글을 보실 수도 있으니 소개부터 하면 나는 작년 여름까지 조이코퍼레이션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경력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페이스북에서 영화 <조이>의 예고편 영상을 발견했다. 처음 한 생각은,

어쩔, 진짜 SEO 망했구나

애초부터 SEO 따위 포기한 이름이었지만, 심지어 창업 스토리 영화가 나오면 어떡하란 말이냐. 단체관람하자고 회사 그룹에 올렸고, 시사회 티켓으로 야근자가 아닌 이들이 같이 봤다. 스펠은 다르지만 조이라는 발음이 들릴 때마다 내 얘기인 것처럼 몰입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창업 이야기다.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꽤 각색됬지만) 실화다.

그냥 감상 몇 줄 적자면

  • 내가 불편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내가 피부로 느꼈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게 정답이다.
  • 저 시대와 비교하면 요즈음 우리가 이야기하는 창업은 참 쉬워졌다. 자본 시장의 지원 면에서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채널 면에서나.
  • 지금은 지루+고루해졌지만, 홈쇼핑 방송이 지금의 킥스터터나 인디고고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요샌 그 시절처럼 홈쇼핑을 통해서만 살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실제 인물의 이름도 조이였단다.

위키피디아 링크. https://en.m.wikipedia.org/wiki/Joy_Mangano

어디까지가 실화인지가 궁금하면 아래 링크.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아직 보지 마시고. 맨 아래 동영상 중 가장 위에 있는 대걸레 파는 인포머셜을 영화랑 비교해보면 재밌다.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joy/

알고보니 나도 그녀가 만든 제품의 은혜를 입었는데, 흘러내리지 않는 “허거블 행어”의 발명가였다!! 아마도 글로벌로는 특허 방어를 잘 못 했던 것 같다. 한샘이나 중국제 제품이 흐르고 넘치니까. 처음엔 허거블 행어를 샀고 후에 더 싸게 나온 카피 제품을 산 기억이 있다. 어쨌든 이 옷걸이 없었으면 옷장 속 공간이 지금보다 더더욱 부족했겠지. 고마워요 조이.

작년에 많이들 보셨을 <인턴>보다 창업가에게 많은 걸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는 영화다. 특히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내 주변에 둬야 할 사람과 끊어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이신 분들께도.

외로운 자리

비즈니스 사이즈에 관계없이 대장 노릇 하는 건 외롭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혼자 좋은 방에 앉아있는 대표님은 외로워 보였다. 눈치보고 있으면 밥 같이 먹을 사람 없는 날인 각이 느껴졌다. (아무도 그와 놀아주지 않았다!) 상태가 심해보인다 싶으면 비서 언니에게 물은 후, 아무 것도 모르는 여직원 얼굴을 하고 방문 앞에 기어가 대표님 맛있는 거 사주세요 배고파요 징징징을 시전했다. 스물 몇 살의 나는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밥을 혼자 먹을 수 밖에 없어 도시락 따위를 사다달라 부탁하는 장면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직 한 줌, 열 명 될까 한 스타트업의 대표도 외롭다. 모두와 1:1을 하고, 일이 되게 하고, 속도가 나게 하고, 그리고 가능한 사람들 마음도 살피려 애쓴다. 객관적으로 다른 팀이 어렵게 푸는 이슈를 그의 개인적 능력으로 쉽게 푼 편이지만, 멤버들은 그걸 잘 모른다. 하루 종일 한 명 한 명의 문제를 듣고 나서는, 제 문제는 누가 들어주냐고 외치고 싶다고 했다.

대장도 아니었음에도, 나 역시 마음에 바람이 자주 불었었다. 어느 회사의 대리, 과장, 부장 친구들과 어울려 회사 욕, 상사 욕하는 걸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성과를 내고 네 밥값을 하던가, 상사가 영 거슬려서 일이 안되면 수단과 방법을 다해 그 인간을 치워버리던가, 아니면 나가던가. 욕하고 운다고 뭐가 해결되니. 나는 그 시절 직장인의 평범한 마음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이보다 잘 하실 수 있나요 묻고 싶은 그도, 출근하기 전 울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가면을 쓴다고 했다. 엄청난 감정의 업다운이 있더라도 잘 눌러담은 후 세상에서 가장 에너제틱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오피스로 간다. 사적으로는 그 어려움이 마음 아프고, 공적으로서는 그 절제가 존경스럽다.

회사가 작아도 커도, 이끄는 사람은 외롭게 되어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맑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를 기도해본다.

Willingness to recommend

영어 수업할 때 쓰는 교재여서 폴 그레이엄의 교과서 같은 글을 다시 읽었다. 시간이 지나니 또 다른 느낌으로. 전화 영어를 2007년부터 썼던 스피쿠스에서 링글로 바꿨는데, 주변에 열심히 추천 중. 단 아직 좀 불안정한 면이 있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나 테크 인더스트리 사람들에게만. user  id가 아직 300번 대인 걸 보니 몹시 초기인데, 저 폴 그레이엄의 말을 정말 온 맘을 다해 실천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사용자 피드백이 들어가서 반영되는 게 눈에 너무 잘 보인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초기 단계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사용자와 시장을 향해 귀를 열고 있기가, 말은 쉽지 어렵다. 당장 한 줌 잡은 고객은 작아 보이기만 하고 겉멋 들기는 얼마나 쉬운지.   

다른 데서 벌어졌으면 진상 부리며 날 뛰었을 일도 그냥 아이고, 애쓰는구나,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정말 이 문제 풀고 싶어 하는구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연결되기 힘든 양면 시장을 연결해주는 데서 가치가 발생하는 사업 모델이 많은데, 최근 한 반 년 사이 나온 양면 시장을 연결하려는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그냥 최고인 것 같다. MBA나 전략 컨설팅펌 출신 창업자여도 다 같은 거 아니구나, 농으로라도 함부로 앞에 마이너스 붙이면 안되겠다 생각했다.

이제 한국에도 폴 아저씨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긴지 글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는 창업가 커뮤니티가 많이 커진 듯 느껴진다. 하지만 저 스테이지를 지나 정말 ‘Do things that do scale’을 고민해야 할 때 참고할 아티클이나, 찾아가 물어볼 사람이나, 함께 고민해 줄 투자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보게 된 Blitzscaling 동영상. 스탠포드 한 학기 강의 녹화본이 다 올라와 있다. 뭐 이런 분들이 학교까지 와서 무릎 늘어난 청바지를 입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배운 거라고 떠먹여주고 있지. 여기 앉아서 저 내용을 다 볼 수 있는 게 살짝 실감이 안 난다.

땅의 기운을 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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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비나더‬가 한국에 정식 런치할 예정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까지 프리 쉬핑이 되는 걸로 나와 이걸 어쩌나 싶었더니 결국 그 가격이 거의 정확히 한국 가격이다. 요샌 직구 다 고려해서 프라이싱해야하니 쉽지 않겠다.

공홈은 내가 본 주얼리 쇼핑몰 중에 젤 잘 만든 것 같은데, 여러 아이템을 골라 가상으로 레이어드해볼 수 있게 되어 있고, 반지를 온라인으로 쇼핑할 때 가장 큰 허들인 사이즈는 프린트해서 기존 반지를 대보고 가늠할 수 있게 해놨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지. 잘되는 브랜드는 서로 닮았고, 안되는 브랜드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안되는 것 같다.

신세계에서 팝업스토어 하고 있다. 본점 신관 1층 5월 22~28일, 강남점 1층 6월 1~11일. 아이고 사업 아이템 바뀌고 나서 제일 힘든 점 중 하나는, 쇼핑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다.

 

2.

현대차랑 미팅인데 외제차 타고 가느니 택시타고 가야하는 것처럼, 패션 브랜드와 미팅이 있으면 그 브랜드의 아이템, 가능한 이번 시즌에 나온 걸로 걸치고 가는 게 좋다. 정말 한 브랜드에서 그동안 누적으로 내놓은 아이들이 수만가지일텐데, 매의 눈으로 알아보고 꼭 한 마디 한다. 저희 무슨 라인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그냥 애정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선배는 그게 “예의”라고까지 말한다. 헉 예의는 좀 과한 표현 아니유? 높은 사람들일 수록 스캐닝하는 속도와 깊이가 장난이 아니고, 어느 중요한 자리에 잘못 입고 가면 한 계절 내내 뒤에서 씹히는 수가 있다고 했다. 아니 외모로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 하긴, 이 동네 업의 본질이 딱 그건데 당연한 거지.

 

3.

레스토랑을 여러 개 갖고 있고, 건축과 부동산 개발을 전공한 분에게 물었다. 레스토랑을 새로 내실 때 제일 먼저 뭘 보세요? 모 브랜드가 이렇다 할 출점 전략이 없이 주먹구구식이라 하여 요 며칠 고민하다가 한 질문이었다. 내 주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스타벅스의 루빈팰드와 젤 비슷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니까네.

땅의 기운을 보지.

뭔 소리야 이게. 아저씨 지금 고등교육 받고 유학갔다와서 가방 끈 몹시 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말해서 그렇지 주변의 이미지를 떠올려. 예를 들면 도산공원 근처는 밝고 환하고 햇빛이 비치는 느낌인데, 이태원은 좀 퇴폐적인 느낌이어서 도산공원을 골랐어, 뭐 이런 식이었다. 오잉 저는 도산공원은 좀 늙은 느낌이고 이태원이 더 밝은 느낌인디요. 그러게 그건 좀 주관이 개입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이미지가 중요해. 어짜피 여기 오픈 전엔 상권 다 죽어서 길 앞에 지나다니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어.

데이터 안 보고 감에만 의지하는 결정도 위험한데, 감없이 데이터만 들고 하는 결정도 허술하다. 인생 모든 것은 밸런스.

옛날 생각 많이 하면 늙는 거라던데

– 2008년 M본부에서 비즈스파크 런치할 때는 startup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며 그냥 한글로 스타트업이라고 쓸까 벤처기업이라고 쓸까 초기기업으로 할까 고민했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일간지에서도 쓰고 있다. 국어야 미안해.

– 그 해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몇 백개 테크 회사들에게, 매일 한 통씩만 걸면 돼, 하고 다 콜드콜을 걸었다. 주말엔 쉬어야 하니까 가끔은 두 통 걸지 뭐. 바보같이 일한다고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TM은 벤더 쓰라며. 그 땐 겨우 백개 단위였는데, 요샌 연 한 2천개는 생기지 않을랑가.

– 포트폴리오사들에게 비즈스파크 소개해달라며 처음 만난 게 본이었다. 테헤란로 어드멘가의 스벅이었던 듯. M본부가 뭐하러 이런 걸 하냐고 단속용 DB쌓는 거 아니냐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보시던 강이사님 표정이 기억난다.

– 블루홀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규모에서 쓰기엔 훨씬 많은 직원들이 라이센스를 써야해서, 여긴 해줘도 괜찮다고 본사 담당 설득하느라 진 뺐었다. 그거 명수 제한 풀어줬다 영업 쪽에서 엄청 다굴 당했던 기억도 나고

– 테크 인더스트리에서 ‘조직’의 초기를 케어하는 게 비즈스파크였으면, ‘사람’의 초기를 케어하고 육성하는 건 드림스파크랑 이매진컵 등등 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이매진컵 >> 삼성멤버십 >> 삼전의 테크트리를 탔다. 가끔 나오는 창업 건은 아주 예외.

옛날 미투를 떠올리게 하는 서비스, 어라운드를 만든 신상이를 보며 정말 사람도 기업도 크는구나, 사람과 기업의 초기단계를 케어해야 생태계가 풍부해지는 건 맞는 방향같다 회상해본다.

그 때도 M본부 사람들은 영어공부를 해야하는데, EBS 영어지문을 외우고 있는 바보짓을 했다. 그 와중에도 그러나 바보짓이라규 괴로워하느니 지문을 잘 외우면 영어가 늘기도 했다며…

– 신상이에게 나름 오랜 시간, 관찰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1인 가구로 가득한 도시는 외롭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아직 신이 났고 힘찼다. 몇 년 더 해보면 그도 다른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지.

– 나는 내가 먼저 일을 벌린 후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력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난 그 불안의 무게를 다 버텨낼 자신이 없다.

– 결론은 딱히 없다. 그 많던 몇 백개의 회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단속 나오는 거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이 많았는데, 3년을 채우고 졸업한 곳들이 몇 퍼센트나 되려나. 3년 살아남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하면 엄청 싸했었다.

살아남아 다시 이야기하자.

엑셀 추천과 공이공

글로벌 패션 브랜드 본사와 APAC Region Office에서 일해본 선배와 얘기하면서 황당할 때가 많았다. 특히 기막혔던 건, 온라인에서 제품 추천을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하고 있다는 거. 국가마다 이 일을 하기 위한 온라인 MD가 따로 있고, 엑셀로 아이템 번호를 정리해서 넣는 것 같았다. 이 업무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기도 한다고.

아니 언니, 아마존 보면 추천 잘하지? 그런 거 다 기계가 하는 거야. 그렇게 안 어려워. 추천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도 많이 있는데 소개해 줄까요.

대답은 아니 됐어. 시장마다 이거 하는 인력이 있고 전세계 합치면 두 자리 수는 될 텐데, 그 사람 일자리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나서서 시작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이 언니가 본사에 있을 때 보스로 모시던 분은 아버지 연배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는데, 이메일을 받으면 프린트해서 드린다고 했다. 읽고, 답장을 쓰신 후 하단에 서명까지 아름답게 해서 주신다고. 그럼 어시스턴트가 그 편지를 다시 타이핑 해서 보낸다. 으히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부 잘만 돌아갔다.

테크 인더스트리에 있으면 변화가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영역으로 가면 속도감이 다르고, 정보 격차도 크다. 요새 패션과 뷰티 산업에 계신 분들을 자주 만나며 다시 한 번 체감한다. 나도 보도자료나 기획서를 팩스로 넣던 기억이 있고, 설마 오늘날 팩스 수준은 아니어도, 이메일 보내고 나면 유선으로 메일 받으셨냐고 체크해 줘야하는 산업이나 기업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옛 보스가 옴니채널과 O2O에 대한 책을 썼는데, 우리만 난리라고, 다들 O2O를 공이공으로 읽는다고 잘 팔리긴 글렀나보다며 농담을 했는데 같은 맥락 이야기. 천천히, 쉽게 풀어 말하고, 변화엔 시간이 걸리지만 어느 분기점을 넘으면 또 순식간일 것을 알기에, 체력을 비축할 일이다.

“계속” 배우는 사람

오늘 명절과 명절 사이 뭐하고 지내는지 모르는, 학부생 사촌 동생과 밥을 먹었다. 리크루팅이 맘같지 않아 내가 더 할 수 있는 노력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니, 내게 이제 7학기 또는 8학기 째인 컴터 전공 사촌동생이 둘이나 있는 것이다. 한 녀석은 연대, 한 녀석은 성대, 선린 출신.

(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이코퍼레이션 개발팀 채용중입니다. 생전 업데이트 안하는 걸 누가 보나 싶은데, 회사 웹사이트 리퍼러 중 이 블로그가 꽤 상위권이어서 놀람…)

평소 선린 출신이 괜찮았던 경우가 많아서, 평소 안 친하다가 친한 척 하는 빤한 짓을 한다. 그랬더니 이누마 하는 말이, “아 선린엔 두 부류가 있어. 진짜 어릴 때부터 코딩하는 거 좋아하고 잘하다가 선린 와서 계속 재밌게 한 애들, 다른 한 부류는 좋아하는 줄, 잘 하는 줄 알고 갔는데 아 나는 바보구나 깨닫고 그만 둔 애들. 난 안타깝게도 후자인 것 같아.”라는 것이다… 아아아아.

나는 천재개발자 한 명이 못하는 사람 만 명 수준의 생산성 류의 이야기는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타트업은 한 사람의 퍼포먼스에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가능한 여러 모로 잘 하는 사람을 태우려고 노력하긴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개발은 어떤 조건을 타고나야 더 잘 할 수 밖에 없는 발레나 운동이나, 악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노력하고 훈련할 수 있는 종류에 가까워 보인다. 아님 한 명의 퍼포먼스에 그렇게까지 심히 영향을 받는 조직이라면, 아주 작고 초기 단계의 팀이 아니라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단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여튼, 고등학교도 가기 전에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있는 류의 바람직한 인재가 요즘 시대엔 씨가 말랐으므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전히 가끔은 나 바보라며 자괴감에 빠지지만 마흔 넘도록 엔지니어로 잘 먹고 잘 사는 주변의 (사실 흔치 않은) 예들을 이야기 해주고, 나름대로 북돋는 말들을 쏟아낸 후 돌아왔다. 또는 지금 안정적인듯 보이는 선택지가 사실은 별 거 아니니, 어떤 회사가 가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업에 충성해야 맞다는 류의 이야기도 한 것 같다.

얼마전 임정욱 님이 올리셨던 포스트를 보며, “호기심이 새로운 학벌이다”라는 문장에 매우 공감했다. 상관없는 이야기인 듯 사실 상관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가끔 이상형이나, 만나는 남자 이야기를 할 때면 주변에서 “너 학벌 많이 보는구나!”라고 하는데, 매번 그 거랑 좀 다르다고 고쳐준다. 나는 늙도록 새로 배우고 싶은 게 있고 호기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 좋다. 멀쩡히 좋은 학교 나오고도, 삼십대에 이미 조로하여 세상 더 궁금한 게 없는 사람도 매우 많다. 그런 이는 학교에 관계없이 인재로서는 물론, 연애 상대로서도 흥미롭지 않다고 말해왔다. 호기심 다 죽은 사람이 현재는 어딘가에서 밥을 벌고 있을지 모르나, 기대수명 80살을 살아야 하는 때에, 함께 꾸민 둥지에 계속 이 남자 사냥에 성공하고 먹이를 물어올 수 있을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 고딩이던 시절과 지금은 또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다시 앞으로 밥먹고 살아야하는 적어도 한 30년 동안은 세상이 계속,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바뀔텐데, 그 때 잘한다고 생각했던 애들이 십년, 이십년 후엔 다른 자리에 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냥 하고 싶고 재미있었던 걸 계속 하라고, 남이랑 비교하지 말고,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안 먹히겠지. 하하하.

자꾸 잔소리 많은 꼰대가 되어간다. 하나도 안 들릴 걸 알면서.

아무튼 요약하면, 계속 배우는 거 중요하다. 물론 잘하던 걔가 계속 호기심이 살아있고 평생 공부하는 타입이면, 포기해. 이길 수가 없다… 아하하하하하.

5명 중 1명은

기사를 먼저 보았고,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 배우지 못하거나 배곯는 서러움 같은 건 부모 세대에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땐 다 같이 서럽기라도 했지, 태어날 땐 보드라운 볼에 젖내를 풍기며 예뻤을 아이들인데, 안타깝기도 하고 책 제목대로 미안하기도 했다. 요새 말 많은 급식 뉴스도 떠오르며 애들 밥 주는 거 못하겠다는 이와 이 책 쓴 이가 둘이 토론회 같은 거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전 회사 일 할 때 인구 대비 대학생 비율이나 대학진학률 같은 걸 조사할 일이 많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하필 그 때가 정점이었다. 어쨌든 좀 빠진 지금도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그 때 84%에 달하는 대학진학률을 보며 높은 것도 문제이긴 한데, 이 발에 채이게 흔한 대학 졸업장마저 얻지 못하고 세상에 던져진 16%는 어쩌나 걱정됐었다. 조사 기준이 달라져서 예전 기준으로 하면 2011년, 77% 정도 되나보다. 여전히 대학에 가는 이가 훨씬 흔하다. 5명 중 4명. 그러니 출신 학교나 학번을 밝히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이 4명들이 모여앉아 하는 말이고, 남은 1 명은 니들이 학교를 밝히거나 말거나 학번을 까거나 말거나 그냥 하루 하루 밥을 버느라 지쳤을 것이다. 가족이 다 모여 앉아 밥 한 끼 먹어보길 소원하며.

창업을 합네, 취업을 합네, 우리 세대가 더 힘드네 하는 것도 어쩌면 4명들의 리그일 거다. 그럭저럭 77% 안에 들어 잘 배우고도 미래가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데, 이렇게 고단한데, 23% 쪽의 삶은 얼마나 더 퍽퍽할까.

오늘의 기도

내일 미팅 준비해야하는데 자꾸 회상인지 회고인지를 하게 되어 곤란데스요…

나는 이제 좀비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옛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더랬는데, 예상대로 되었다. 요즘엔 순간순간, 우왕 이 아저씨 이제 좀비킹 왕좌를 만들어 앉혀야겠다 한다. 8년째, 여전히 나는 개인의 성장 그래프 중에, 이 인간이 그리는 모양새 같은 건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엄청난 기울기의 하키스틱 그로스.

며칠 전이었나,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건 줄 미리 알았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너무 격하게 끄덕거렸다. 나도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뭣도 모르고 하라고, 하라고, 이상한 뽐뿌질 같은 건 안했을 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꾸 누웠을 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건 일어난 일보다 일어날 일이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어느새 삼십대 초반이 되어 결혼을 한단다.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지금 좀비씨의 나이가, 내가 온통 어른인 척 하고 앉았었던 카이로나 바르샤바에서의 내 나이보다 많고나. 어쩌면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청년을, 사랑하고 믿어주고 함께하기로 결정한 그 아가씨가 너무 고마운데, 고맙다고 말도 못 붙여봤다.

눈에 보이게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을 떠올린다. 또는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계신지도 잘 모르시면서 도와주신 분들도 떠올린다. 오늘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 우리가 더 긴 호흡으로 이루고 싶어한 것들과 지키고 싶어한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배우는 사람

지리한 버팀의 시기에, 외주 클라이언트로 만난 분이 있다. 영리법인이 아닌데도 일해 본 어떤 기업보다 스마트한 조직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봉사하시는 거였고, 당신이 하시는 사업은 따로 있는 사장님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다른 일을 소개해주셨고, 당신도 이걸 배워보고 싶으시다며 자주 전화하시고 찾아오셔서 내 시간을 빼앗고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딸래미가 학교 후배인데다 하필 또 딸래미 이름은 나와 정확하게 일치. 나이도 있으셔서 짜증은 날지언정 거절하기는 어려운 분이었다.

한 달쯤 잠잠하시다 싶었는데, 오늘 보여주신 작업 결과물들이 놀라웠다. 딸 통해서 이대 도서관에 있는 관련 책들은 빠짐없이 빌려보셨다고 했다.

배우는 자세는 나이가 먹고, 고집이 생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록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아저씨가 한참 날 괴롭히실 때, 나는 이 분이 하실 수 없는 일에 애쓰신다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먹어 생판 모르던 걸, 친절하지 않은 목소리 들어가며 묻고 또 물어 배울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시다고 앞에서 대놓고 칭찬해 드렸다. 진심으로 감동했다. 거절 못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