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추천과 공이공

글로벌 패션 브랜드 본사와 APAC Region Office에서 일해본 선배와 얘기하면서 황당할 때가 많았다. 특히 기막혔던 건, 온라인에서 제품 추천을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하고 있다는 거. 국가마다 이 일을 하기 위한 온라인 MD가 따로 있고, 엑셀로 아이템 번호를 정리해서 넣는 것 같았다. 이 업무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기도 한다고.

아니 언니, 아마존 보면 추천 잘하지? 그런 거 다 기계가 하는 거야. 그렇게 안 어려워. 추천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도 많이 있는데 소개해 줄까요.

대답은 아니 됐어. 시장마다 이거 하는 인력이 있고 전세계 합치면 두 자리 수는 될 텐데, 그 사람 일자리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나서서 시작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이 언니가 본사에 있을 때 보스로 모시던 분은 아버지 연배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는데, 이메일을 받으면 프린트해서 드린다고 했다. 읽고, 답장을 쓰신 후 하단에 서명까지 아름답게 해서 주신다고. 그럼 어시스턴트가 그 편지를 다시 타이핑 해서 보낸다. 으히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부 잘만 돌아갔다.

테크 인더스트리에 있으면 변화가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영역으로 가면 속도감이 다르고, 정보 격차도 크다. 요새 패션과 뷰티 산업에 계신 분들을 자주 만나며 다시 한 번 체감한다. 나도 보도자료나 기획서를 팩스로 넣던 기억이 있고, 설마 오늘날 팩스 수준은 아니어도, 이메일 보내고 나면 유선으로 메일 받으셨냐고 체크해 줘야하는 산업이나 기업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옛 보스가 옴니채널과 O2O에 대한 책을 썼는데, 우리만 난리라고, 다들 O2O를 공이공으로 읽는다고 잘 팔리긴 글렀나보다며 농담을 했는데 같은 맥락 이야기. 천천히, 쉽게 풀어 말하고, 변화엔 시간이 걸리지만 어느 분기점을 넘으면 또 순식간일 것을 알기에, 체력을 비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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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배우는 사람

오늘 명절과 명절 사이 뭐하고 지내는지 모르는, 학부생 사촌 동생과 밥을 먹었다. 리크루팅이 맘같지 않아 내가 더 할 수 있는 노력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니, 내게 이제 7학기 또는 8학기 째인 컴터 전공 사촌동생이 둘이나 있는 것이다. 한 녀석은 연대, 한 녀석은 성대, 선린 출신.

(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이코퍼레이션 개발팀 채용중입니다. 생전 업데이트 안하는 걸 누가 보나 싶은데, 회사 웹사이트 리퍼러 중 이 블로그가 꽤 상위권이어서 놀람…)

평소 선린 출신이 괜찮았던 경우가 많아서, 평소 안 친하다가 친한 척 하는 빤한 짓을 한다. 그랬더니 이누마 하는 말이, “아 선린엔 두 부류가 있어. 진짜 어릴 때부터 코딩하는 거 좋아하고 잘하다가 선린 와서 계속 재밌게 한 애들, 다른 한 부류는 좋아하는 줄, 잘 하는 줄 알고 갔는데 아 나는 바보구나 깨닫고 그만 둔 애들. 난 안타깝게도 후자인 것 같아.”라는 것이다… 아아아아.

나는 천재개발자 한 명이 못하는 사람 만 명 수준의 생산성 류의 이야기는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타트업은 한 사람의 퍼포먼스에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가능한 여러 모로 잘 하는 사람을 태우려고 노력하긴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개발은 어떤 조건을 타고나야 더 잘 할 수 밖에 없는 발레나 운동이나, 악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노력하고 훈련할 수 있는 종류에 가까워 보인다. 아님 한 명의 퍼포먼스에 그렇게까지 심히 영향을 받는 조직이라면, 아주 작고 초기 단계의 팀이 아니라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단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여튼, 고등학교도 가기 전에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있는 류의 바람직한 인재가 요즘 시대엔 씨가 말랐으므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전히 가끔은 나 바보라며 자괴감에 빠지지만 마흔 넘도록 엔지니어로 잘 먹고 잘 사는 주변의 (사실 흔치 않은) 예들을 이야기 해주고, 나름대로 북돋는 말들을 쏟아낸 후 돌아왔다. 또는 지금 안정적인듯 보이는 선택지가 사실은 별 거 아니니, 어떤 회사가 가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업에 충성해야 맞다는 류의 이야기도 한 것 같다.

얼마전 임정욱 님이 올리셨던 포스트를 보며, “호기심이 새로운 학벌이다”라는 문장에 매우 공감했다. 상관없는 이야기인 듯 사실 상관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가끔 이상형이나, 만나는 남자 이야기를 할 때면 주변에서 “너 학벌 많이 보는구나!”라고 하는데, 매번 그 거랑 좀 다르다고 고쳐준다. 나는 늙도록 새로 배우고 싶은 게 있고 호기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 좋다. 멀쩡히 좋은 학교 나오고도, 삼십대에 이미 조로하여 세상 더 궁금한 게 없는 사람도 매우 많다. 그런 이는 학교에 관계없이 인재로서는 물론, 연애 상대로서도 흥미롭지 않다고 말해왔다. 호기심 다 죽은 사람이 현재는 어딘가에서 밥을 벌고 있을지 모르나, 기대수명 80살을 살아야 하는 때에, 함께 꾸민 둥지에 계속 이 남자 사냥에 성공하고 먹이를 물어올 수 있을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 고딩이던 시절과 지금은 또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다시 앞으로 밥먹고 살아야하는 적어도 한 30년 동안은 세상이 계속,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바뀔텐데, 그 때 잘한다고 생각했던 애들이 십년, 이십년 후엔 다른 자리에 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냥 하고 싶고 재미있었던 걸 계속 하라고, 남이랑 비교하지 말고,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안 먹히겠지. 하하하.

자꾸 잔소리 많은 꼰대가 되어간다. 하나도 안 들릴 걸 알면서.

아무튼 요약하면, 계속 배우는 거 중요하다. 물론 잘하던 걔가 계속 호기심이 살아있고 평생 공부하는 타입이면, 포기해. 이길 수가 없다… 아하하하하하.

5명 중 1명은

기사를 먼저 보았고,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 배우지 못하거나 배곯는 서러움 같은 건 부모 세대에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땐 다 같이 서럽기라도 했지, 태어날 땐 보드라운 볼에 젖내를 풍기며 예뻤을 아이들인데, 안타깝기도 하고 책 제목대로 미안하기도 했다. 요새 말 많은 급식 뉴스도 떠오르며 애들 밥 주는 거 못하겠다는 이와 이 책 쓴 이가 둘이 토론회 같은 거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전 회사 일 할 때 인구 대비 대학생 비율이나 대학진학률 같은 걸 조사할 일이 많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하필 그 때가 정점이었다. 어쨌든 좀 빠진 지금도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그 때 84%에 달하는 대학진학률을 보며 높은 것도 문제이긴 한데, 이 발에 채이게 흔한 대학 졸업장마저 얻지 못하고 세상에 던져진 16%는 어쩌나 걱정됐었다. 조사 기준이 달라져서 예전 기준으로 하면 2011년, 77% 정도 되나보다. 여전히 대학에 가는 이가 훨씬 흔하다. 5명 중 4명. 그러니 출신 학교나 학번을 밝히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이 4명들이 모여앉아 하는 말이고, 남은 1 명은 니들이 학교를 밝히거나 말거나 학번을 까거나 말거나 그냥 하루 하루 밥을 버느라 지쳤을 것이다. 가족이 다 모여 앉아 밥 한 끼 먹어보길 소원하며.

창업을 합네, 취업을 합네, 우리 세대가 더 힘드네 하는 것도 어쩌면 4명들의 리그일 거다. 그럭저럭 77% 안에 들어 잘 배우고도 미래가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데, 이렇게 고단한데, 23% 쪽의 삶은 얼마나 더 퍽퍽할까.

오늘의 기도

내일 미팅 준비해야하는데 자꾸 회상인지 회고인지를 하게 되어 곤란데스요…

나는 이제 좀비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옛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더랬는데, 예상대로 되었다. 요즘엔 순간순간, 우왕 이 아저씨 이제 좀비킹 왕좌를 만들어 앉혀야겠다 한다. 8년째, 여전히 나는 개인의 성장 그래프 중에, 이 인간이 그리는 모양새 같은 건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엄청난 기울기의 하키스틱 그로스.

며칠 전이었나,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건 줄 미리 알았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너무 격하게 끄덕거렸다. 나도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뭣도 모르고 하라고, 하라고, 이상한 뽐뿌질 같은 건 안했을 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꾸 누웠을 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건 일어난 일보다 일어날 일이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어느새 삼십대 초반이 되어 결혼을 한단다.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지금 좀비씨의 나이가, 내가 온통 어른인 척 하고 앉았었던 카이로나 바르샤바에서의 내 나이보다 많고나. 어쩌면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청년을, 사랑하고 믿어주고 함께하기로 결정한 그 아가씨가 너무 고마운데, 고맙다고 말도 못 붙여봤다.

눈에 보이게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을 떠올린다. 또는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계신지도 잘 모르시면서 도와주신 분들도 떠올린다. 오늘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 우리가 더 긴 호흡으로 이루고 싶어한 것들과 지키고 싶어한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배우는 사람

지리한 버팀의 시기에, 외주 클라이언트로 만난 분이 있다. 영리법인이 아닌데도 일해 본 어떤 기업보다 스마트한 조직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봉사하시는 거였고, 당신이 하시는 사업은 따로 있는 사장님이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다른 일을 소개해주셨고, 당신도 이걸 배워보고 싶으시다며 자주 전화하시고 찾아오셔서 내 시간을 빼앗고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딸래미가 학교 후배인데다 하필 또 딸래미 이름은 나와 정확하게 일치. 나이도 있으셔서 짜증은 날지언정 거절하기는 어려운 분이었다.

한 달쯤 잠잠하시다 싶었는데, 오늘 보여주신 작업 결과물들이 놀라웠다. 딸 통해서 이대 도서관에 있는 관련 책들은 빠짐없이 빌려보셨다고 했다.

배우는 자세는 나이가 먹고, 고집이 생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록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아저씨가 한참 날 괴롭히실 때, 나는 이 분이 하실 수 없는 일에 애쓰신다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먹어 생판 모르던 걸, 친절하지 않은 목소리 들어가며 묻고 또 물어 배울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시다고 앞에서 대놓고 칭찬해 드렸다. 진심으로 감동했다. 거절 못하길 참 잘했다.

구라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유명세를 탄다. 퍼블릭 스피치가 점점 느는 걸 관찰하며 대견해한다.

요 며칠 소셜 미디어에서 많이 공유되는 전 세대 창업가의 스피치에, 친구분들이 ‘많이 늘었네’라고 하시는 걸 보며 아 내게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는 사람도 친한 사람들에겐 그냥 ‘그 사람’일 뿐이겠구나 생각한다. 나한텐 아직도 소년 같고 점점 얼굴 팔리고 바쁘게 사는 게 안쓰럽기만 한 그대들이, 누군가에겐 큰 성공을 한 걸로 보이기도 하겠구나. 무슨 일이 우리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 놓이던, 그냥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나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것 다 만들어 줄 수 있다던 구라는, 3년이 지나 이제 이루어진 셈. 한국어가 서툰 멤버가 ‘주말동안 싸웠어요, 근데 이겼어요’ 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 참 좋았다. 내가 욕심이 아닌 사랑을 따를 수 있기를, 우리는 늘 그래왔듯 많이 부족해도 계속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하기

엊그제 우리 팀과 두 달 가량 일했던 국대 대기업의 PM이 조심조심 말했다.
“혹시 그 분, 외국 살다 오셨어요?”

이메일 쓰레드를 따라 읽으며 너무 수분이 부족(?)하다 느끼긴 했었다.

이메일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행간에 내가 파악하지 못한 감정이 있을까 서로 전제를 깔지 않을 수록 좋은 것 같다. 특히 조직 내에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경우에는 설사 그/그녀가 조직이 표준으로 쓰는 언어를 읽고 쓸 줄 안다고 해도 바로 번역기에 가져다 붙여도 문제없이 번역될 문장으로 써야 하고, 읽는 사람의 시간을 적게 뺏을 수 있을 수록 좋다(고 배웠고 가르쳤다. 그러나 조직마다 다른 규율이 있겠지.)

우리는 맥락을 파악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다. 다양한 사람들과 일해야 할수록 가능하면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연습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신 갑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 분은 외국 살다 오지 않았습니다요.

편하지 않아

회사를 이사했다. 햇수로 7년째, 익숙한 삼성동을 떠나 분당으로 왔다.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6시-6시 20분 사이에 집에서 나서면 7시 근처에 도착한다.

어찌보면 내게 세상 불편하게 느껴졌던 일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 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

아직 작심3일째지만 생각보단 수월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평상시보다 풀 메이크업으로 현관을 나선다.

(아님 늙어서 잠이 줄어드는 중이거나??)

누가 이 시간까지 오라고 강제했으면 못하거나 또는 안하거나 했겠지.

예전에 매일 7시면 사무실에 나와 있던 보스는 우리가 나타나기까지 매우 심심하고 외로웠겠구나 생각도 하고

새벽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올빼미로 삼십년 넘게 살아온 인간에겐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끔 나를 옮겨볼 필요가 있다.

해 뜨면 움직이고 해 지면 자는 삶(!)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고, 하루치 할 일들이 9시 이전에 이미 끝날 때가 많다는 것에 놀란다.

아저씨들이 달보면서 출근하셔서 사람들을 들볶을 준비를 하시던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꾸준함에 대하여

1.

임 여사가 대표님이 된지 일 년이 됐다. 나는 내일 모레 환갑을 앞둔, 나와 동생을 낳아 키워내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주부였던 여자를 과소 평가했다. 시작할 무렵 그녀는 참 어리버리했다. 임 여사님이 손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안절부절했었다.

임 여사님들은 친절하지 않은 조카 혹은 딸년에게 키워드 광고 하는 법도 배우고, 블로그 하는 법도 배우셨다. 학습 속도가 빨랐다. 임여사는 신나했다. 이 불경기에 엄청난 수입은 아닐지언정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걸. 피곤할 때도 많다. 하루 종일 있었던 모든 일을 중계하고 싶어하시니까. 좋은 손님, 나쁜 손님, 이상한 손님 이야기는 화수분처럼 끝도 없었다.

오늘 우연히 손님 전화를 받는 걸 들었는데, 어머 임 여사 여우 다 됐네. 적당히 사람 안달나게, 세련되게, 물어봐야 하는 정보들 챙겨가면서 전화 참 잘 받더라는. 아 기특하기 짝이 없다.

 

2.

학생일 때는 이런 10년 후를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앵커 멘트를 하고 있는 후배는, 가장 예쁘장하게 태어난 애가 아니라 가장 묵묵했던 애다. 이 친구가 처음 가서 앉은 자리는, 아 그녀가 가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가 기자상을 탔다기에 찾아 본 뉴스. 리포트하는 정치부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그럴 듯 했다. 난 무용가의 딸인 그녀가 저 거친 삶을 지속하기엔 너무 여리고 가늘다고 걱정했다. 한편 딱 보기에도 그 일을 위해 태어난 듯 어울렸던 친구는, 엉뚱한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엉뚱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3.

엄마를 보면서, 친구들을 보면서 한 방향으로 묵묵한 힘이 쌓이면 대단해 지는 걸 본다. 경력 단절이 길어도 내 어미만큼 30년씩이나 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직업의 미래가 불확실할 지언정 얼굴 파는 직업만 할까.

그녀들만큼만 꾸준하면, 뭐든 되겠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내 어미를 포함하여, 다음 10년 뒤에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임 여사는 아마도, 계속 늙지 않고 뭔가를 배우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