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시대의 죽음

며칠전 스티븐 시놉스키가 갑작스럽게 그만뒀다.

좀 과장 보태서, 내가 짤렸대도 그렇게 충격받지 않았을 것 같다. 나한테 시놉스키는 빌 게이츠의 적자같은 이미지였고(빌 게이츠의 개인 Technical Assistant였고 인터넷의 중요성을 보고한 이야기로 유명), 유일하게 스치며 보게 되면 “나 그 사람 봤다~”고 공돌이들이 자랑하는 임원이었다. (아무도 스티브 발머 봤다고 자랑 안한다.) MBA 나온 매니저들만 흔해져 버린 조직에서 마지막 남은 리더/좀비킹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런 저런 매체에서 그 사람 성격이 이상했어, 평판이 나쁘더라, 스콧 포스톨과 묶어서 뻔한 관전평들을 내놓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다.

시놉스키는 윈도우의 개념과 사용자 경험을 송두리 째 바꾼 사람이고, 개인적으로 MS 역사상 가장 래디컬한 변화를 만들어 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낸 사람한테 성격 좋기까지 바라면 안되지. 그리고 사람 좋게 굴면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오래된 조직은 관성과 지켜야 할 영토가 생기기 마련이고, 바꾸려 들면 적이 생긴다. 이건 한국 이야기지만 예전 회사에서 신규사업전략 짤 때 페이퍼만 쌓이지 실행 안되던 프로젝트들이, 욕은 여기저기서 다양하고 심도깊게 먹고 계셔도 결국 다 “되게 하는” 분을 보면서도 다시 한 번 느꼈다.

죽은 스티브 잡스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살아있는 빌 게이츠도 별로 흙탕물에 손 담구고 싶지 않아 하는 인상. 빌 게이츠가 은퇴했을 때보다, 스티븐 시놉스키가 회사를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제 정말 한 시대가 가버리는구나 확 와닿았다. 문돌이가 테크 회사를 리드할 수 없다고, 스티븐 말고 스티브가 나가라고 쫌!

과연 내가 사랑한 끝판왕은 이번 판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핫하고 힙한 그 무엇

친구 중에 패션지 에디터가 있다. 그녀는 ‘Hot’‘Hip’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사용 예시:


요즘 뜨는 힙한 플레이스 알려줄까?
걔 정말 핫하지~!

처음 들을 땐 한국말 이렇게 써도 되나, 이게 뭔가 싶다가,
몇 번 들으면 금새 익숙해지면서 자주 쓰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일명 된장녀 언어 되시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핫하지도, 힙하지도 않은 회사로 이직했다. 구글이나 애플이나 닌텐도쯤 되야 요즘 분위기상 명함 좀 내밀어 볼텐데 말이지. 전설에 의하면 한 때는 그도 시대를 들었다 놨다 했다지만… 그는 더이상 새롭지도, 쿨하지도, 심지어 착하지도 않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다시 사랑받고 싶다고 괴로워 한다.

지금 드는 비유가 엉뚱할지 모르겠다. 2주동안 마이크로소프트를 관찰하면서, 고센이나 플라스틱을 떠올렸다. 이 두 곳은 항상 새로움이 들고 나는 청담동 바닥에서 무려 10년 넘게 살아남은 가게들이다. 더이상 잡지에 오르내리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러나 다른 종류의 뭔가가 있다.

아래 동영상 두 개가 그런 ‘뭔가 있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 없이 피카소 없었고, 미디어 기술의 발전 없이 앤디워홀 없었다. 회사 로고 박힌 셔츠를 입고 다니는 긱, 또는 오덕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나는 그 바뀌는 세상을 살며 신난다고 좋아하고 있고. 이런 걸 만들어 내는 옵하들, 옷 잘 입고 그루밍에 목숨 거는 뺀질이들에 비하면야, 좀 많이 섹시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