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기 힘들 걸

남자는 여자와 아무 상의도 없이 새 차를 샀고, 내일 새 차 올거야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 했나 보다. 남자는 참 착한 사람이지만 그의 가족이 원래부터 그랬던 탓에 서로의 생일을 챙기거나 어떤 구매행동 이전에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소소한 행복을 만드는 일에 익숙치 않은 듯 하다는 말이 뒤따랐다.

여자의 어미는 가르쳐야 된다고 말했다지만, 아 그걸 어느 천년에 가르칠 수 있을까. 구매의 중심에 소유를 놓는 사람과 경험을 놓는 사람은 다르다. 느낄 수 있는 행복? 당연히 다르다. 소유 프레임으로 뭘 사재끼면 금방 공허감이 온다. 오십만원짜리 핸드폰을 사고 나면, 백만원짜리 가방을 사고 나면, 천만원짜리 시계를 사고 나면, 한국에 몇 대 없는 차의 주인이 되고 나면, 더 행복해 질 것 같나. 새로 갖고 싶은 게 또 생길거다. 돈 많아도 소용없다.

예쁜 것 좋은 것 남이 안 가진 것을 내가 가지게 되어 좋을 수도 있지만, 뭘 살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행복하고, 좋아할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니 행복하고, 그 구매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새 차를 타고 여자와 함께 달리는 기분 같은 걸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대인은 소비 없이 살기 힘들다.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 소유보다는 경험의 창을 통해 보는 일은 꽤 중요하다. 근데 그 창은 습관처럼 어릴 때부터 키워줘야지, 나중에 가르치려면 공 좀 들여야 할게다. 사람을 볼 때 집안을 본다는 말은, 사랑받고 자란 사람인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제대로 가르쳤는지, 생일이나 기념일에 서로를 챙기고 식사 약속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인지를 본다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덧. 3월 24일

태우님은 이걸 남녀의 성차로 보거나 더 사랑부족(사랑이 충분했으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한대도 남편의 결정에 순종했을 것이다)으로 말했고 씨에님은 가르쳐야 할 일이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였고 회사에선 리건님과 대화하길  ‘내일 새 차 올거야’ 라고 말해야만 사고 싶은 차를 살 수 있다, 아내와 상의하고 합의하고 조율했으면 사고 싶은 차를 사지 못했을 것이다 ㅠ_ㅠ 라고 하였다.

물론 소유를 통해 열심히 살아낸 나에게 보상을 할 수 있다. 나의 성공에 대한 잣대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 스스로를 대신 할 수 없고, 성공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당신이 사는 것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사회를 살지만, 그 기준만 갖고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된다. 물론 나도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못하는 속물에 불과하지만.

좋은 차 좋은 지위를 얻었으나 사랑과 관계를 경영할 줄 모른다면 그게 무슨 성공이겠나. 그 삶 기어이 한심(寒心)하리니, 차갑게 살다가 가야될 날 맞이하기 쉽겠다.

아무리 남편을 사랑한대도, 내일 새 차 올거야 통보해버리면 아니 서운할 아내가 어디있겠냐구우- 으흐흑.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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