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주커버그가 주장하지 않아도

오늘 선배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워낙 익숙한 곳이어서 새로울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장소인데, 다만 옆 테이블 손님이 거슬렸다. 얼핏 보기엔 그저 평범한 데이트인가 했다. 대화 내용을 듣지 않으려 해도 남자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자꾸만 대화가 우리 테이블까지 넘어온다.

종합하면 남자는 H고등학교를 졸업한 모 병원 의사. 과장. 유부남. 여자는 프랑스로 유학 갔다온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미혼. 둘은 서로 집안끼리 알고 한 때 연애도 했던 사이. 남자 말투가 완전 경우 없고 질이 안 좋은게 빤히 보여서, 옆에서 보면 누가 봐도 저 남자 최악이야! 딱 보니 사이즈 나오는데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너무 가까운 사이여서인가, 인지하지 못한다니 신기할 뿐이다. 모르는 옆 자리 그녀 손을 붙잡고 아 저 남자와 얽히지 마세요 말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굳이 주커버그가 주장하지 않아도,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간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로 조금 공들여 검색하면 둘의 이름과 유부남의 와이프 이름 따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정도의 오지랖과 정의감이 있을 리 없고, 누군가 polygamy를 옹호하는 삶을 살건말건 내 알 바 아니외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심성은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파트너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이 더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런지 모르겠으나. 그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결혼한데다 한 때 자길 좋아했던 남자를 1:1로 만나는 것이며, 남자는 있을 때 잘하지 놓쳐놓고 이제와서 뭐 어쩌자고 여잘 만나 자기 와이프와 장인장모 욕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낮말도 밤말도 들을 이가 참으로 많고, 세상은 갈수록 좁아져 가는데 겁도 없다.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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