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거리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다. 기대와 실제 사이의 간격은 멀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자꾸 사랑을 주는 사람을 약올린다.

이번 주 와인 클래스를 들으며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하나였다.
“와인이 좋으시면 이걸 업으로 삼진 마세요.”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에 다녔던 이였다. 부연이 필요없었다. 그렇죠. 정말 좋아하는 건 좀 멀리 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

거리를 좁히면 현실이 드러난다.
존경하던 이에게서 발견한 허름한 구석은,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발견한 넓고 깊은 모공은,
으헉 이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땡깡피우고 싶게 만든다.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일수록, 알고 보면 지루한 뒷태가 심상찮은 법. 다가가고 다가가서 사랑하는 무언가를 나와 합쳐 버릴 수록, 그 사랑스러웠던 점들은 다 어디가고 별스럽지 않은 일상만 남는다.

그리고 차츰 식어간다.
두근거리던 마음은 당연해지고, 아무렇지 않아지고, 어느 날엔가는 실망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건 내 생각과 다르다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아 멀리서 보니 날 유혹한 특징들이 드러나 다시 곁으로 간다. 이렇게 혼자 밀어냈다 당기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전혀 양가적이지 않은 100% 사랑이란 세상에 없을지도.

안전하고 싶으면 그냥 멀리 두는 게 좋다. 실망할 일도 속상할 일도 없게.
하지만 그저 멀리서 (변태같이) 바라보기만 하면,
나는 사랑한 것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무르고 싶어지더라도,
오늘은 열심히 다가간다. 안전 거리는 개뿔, 혼잣말하며.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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