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사상자 수는 실종자 삼십 명을 포함하여 사망자 오백 일명, 부상자 구백삼십팔 명으로 최종 집계 되었다. – 정이현, 삼풍백화점
2006년 나는
그 붕괴 사고 위에 얹은 건물에서 일했었다.
2007년 나는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남자와 마주하고 앉아 죽음 위에 얹은 건물에서 샌드위치를 씹고 있다. 주문대로 나와주지 않은 접시에 맘이 상하지만 아르바이트 생에게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앞에 앉은 사람을 관찰한다. 미맹도 아니고 취향도 분명하지만, 주어진 음식은 절대 타박않고 정말 맛있게, 최선을 다해 먹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 남자의 먹는 습관에 꽤 높은 점수를 주었다.
벌써 십년도 넘은 일이다. 그 해, 이 나라에 속하지 않았던 남자는 이 건물이 좋아보인다고 꽤 흥분하여 이야기 한다. 뭐 그렇지, 비겁한 긍정. “이 건물에 들어오면 뭐랄까 음침해요”라는 말에 전 직장 상사는 “그렇게 치면 우리 나라에 음침하지 않을 건물이 있겠니” 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살아있는 나라다. 어디로 간들 집단적 죽음이 없을까.
당선이나 마찬가지인 대통령 후보, 그가 젊은 시절을 바쳤다던 재벌기업에서 나온 자동차를 타고 한강을 건넌다. 집이 있는 남쪽에서 회사가 있는 북쪽으로 건너갈 때면 우울하다고 말하는 남자는 박정현의 노래 가사에 취했다. 스스로를 속물과 야심가와 냉혈한 사이에 위치시키고 싶어하는 남자는 그 노래를 한 번 더 반복하여 듣는다.
차는 종로를 지나 지하로 들어가서 멈춘다. 남자가 일하는 오피스 빌딩 지하에 서점이 있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살아있는 전 대통령. 그의 아들이 경영하는 곳이라고 한동안 온라인이 떠들썩 했었다.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키보드 앞에서나 전의를 불태우는 고작 88만원 세대다.
남자는 두꺼운 책 세 권을 계산하고 걸어간다. 뒷모습이 단호했다. 선거하는 날은 휴일인데. 하기사 당신이 이 계절 어느 주말에 쉬어 보았던가. 그 전투적인 걸음을 보며 마음이 아릿하다. 여름에 만난 남자는 소년같았는데, 겨울에 만난 남자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는 주로 경영과 외국어 칸을 헤매이다 결국 소설책을 계산했다.
남자와 처음 같이 본 영화는 하필이면 “화려한 휴가”였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십대도 영화의 맥락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당신은 오죽할까. 지겨워하는 남자를 옆에다 두고 나는 울었다.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오늘은 선거하는 날이었다. 법정 공휴일.
나는 죽음 위에 반짝이는 주상 복합을 지어, 비싸게 팔아치우는 나라에 산다. 피부색은 같지만 아무 문맥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난 이런 감정은 설명해야 맞는지, 부끄러워야 맞는지 헷갈린다.
휴일이 가버렸다.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셨고, 내 부모님의 아파트는 값이 오르겠지. 축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