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됨과 부모됨에 대하여

  1. 잠깐 아기들 좀 안았다고 팔 아프다고 징징이는게 부끄럽다. 아 엄마, 엄마도 날 그렇게 물고 빨고 소중하게 키웠겠지. 일하고 싶은 거 하지도 못하고, 이 나이 먹도록 신경질이나 부려대는 딸년 키우느라고.

아기들에겐 타고난 본성 같은 게 있다. 유독 안아주지 않으면 줄기차게 울기만 하는 아이, 소리도 여릿하게 잘 들리지도 않게 울어서 안쓰러운 아이, 사람 손 안 타도 그저 순해서 자기 발이나 손 먹으면서 잘 노는 아이, 울다가도 손을 잡아주면서 괜찮다고 속삭이면 알아듣는 건지 울다가도 쉽게 그치는 아이. 다 자기 엄마 아빠의 어느 한 구석을 닮았겠지. 책임지지도 못하는데 너희를 이렇게 만든 부모를 원망해야 할까, 아님 생명은 그분 뜻이니 낳는 게 옳은 걸까. 가끔 사람의 삶을 살아낸다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다.  

  1. 막내 이모가 자기 손을 넣은 채로 차 문을 닫아서 손가락 뼈가 으스러졌단다. 그 손을 하고도 셋째 이모 병문안을 매일 왔다는데, 같은 어미가 낳았는데도 어쩜 첫째부터 막내까지 그렇게들 성격이 다른걸까 웃었다. 이 글을 볼리 없으니 솔직하게 말하면, 막내 이모는 마흔줄을 넘고 대학 갈 아들을 두고서도 정말 곱고 예쁜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주 백치미를 자랑하시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그런 예쁜 얼굴을 하고 똑부러지기까지 했으면 재미없었을거야.

큰아버지와 이제 그만 화해하시라고, 당신 성격이 그리 된 건 그리 키워서가 아니었겠냐고 하자 아빤 내가 모르고 있던 가족사를 말한다. 첫번째, 두번째 아들이 죽고 낳은 세번째 자식이었고, 그 다음 네번째 아들도 죽었다고. 그래서 너무너무 귀한 아들이어서 너무 귀하게만 키웠다고. 배려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라고.

  1. 당신이 왜 그런 사람으로 컸는지 다 알고 있으니, 지금 그 모습으로 사랑해 줄 수밖에 없는 가족. 그러나 본성이 울보 또는 순딩이었다고 해서 그 상태로 계속 나이를 먹을 순 없는 거다. 일흔이 되도록 성장하지 못하면, 마흔이 넘어도 늘 걱정투성이 막내면, 아무리 가족이어도 폐를 끼치게 된다. 그리하여 기타노 다케시 말처럼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관계가 돼버리겠지.

사람이 어떤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 잘 크고, 한 사회에 보탬이 되는 누군가로 자라난다는 게 갑자기, 새삼스럽게, 어이없도록,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그 본성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관찰하고 또 관찰해서 키워줄 부분은 열심히 응원하고,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자극을 주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최대한 메꿔주는 일이 아닐까. 부모된 사람들이 아무리 그렇게 열심이었어도 절대 안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사람은 모여서 채우면서 사는 거고.

설날에 모인 가족을 앞에 두고 외할머니는 ‘다 내가 낳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때는 그 말이 좀 웃기게 들렸는데, 오늘 갑자기 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깨달았다.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만들고 키워낸 울 은봉 여사님, 쫌 존경해요. 오래 사셔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