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 회동

오전은 큰아버지와 아버지의 화해 소식를 엄마의 기승전결과 맥락 없는 말하기 방식을 통해 듣느라 시간이 갔다. 객관적, 사회적으로는 좋은 분이고 존경 받는 분일지 모르나, 내겐 그렇지 않았던 큰아버지. 당신께서 그런 분이란 사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닌데, 대수롭지 않은 일에 우애가 상해서는 보네 안보네 하며 몇 해가 지났다. 친가 식구들을 화해시키려고 엄마와 나는 여러 수를 써봤으나 잘 먹히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어제 역삼 회동을 통해 엉킨 실타리는 푸신 것 같다. 우리 보기에 부끄럽지 않냐고, 다 늙어서 무슨 짓이냐고 만나고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싸우고 그러냐고, 나중에 보내놓고 울지 말고 있을 때 잘하라고 친가 가족사에서 맨날 희생양이었던 아버지를 구박했다. 아빠가 착하니까 참으라고, 똑같이 행동하면 아빠가 다를 게 뭐냐고.

큰 아빠는 못 본 사이 많이 편찮으셨던 모양이었다. 삼성 세브란스를 집 드나들듯 하셨다고. 당신이 부족했다는 말을 그 자존심 센 분이 하셨을 걸 생각하니 맘이 아렸다. 큰 아빠 왈, 세상 바보 중에 상 바보가 손주 봐주는 부모랑, 자식들은 찾아올 생각도 않는데 언제 오려나 하고 넓은 집 안 팔고 사는 부모가 최고 바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바보라 그래도 부모 노릇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말씀하셨다고.

며칠 전 왜 신은 사람을 늙고 병들어서 고통받다가 죽게 했는지, 사람이 짠해보이는 모든 게 시간 앞에 다 별 수 없는데서 오는 듯 하다고 했는데, 오늘은 또 생각이 바뀐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하지만, 계속 배우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꽤 찾아온다. 그리고 결정적인 깨달음의 순간은 늙고 병들어가며 내가 유한하다는 걸 알게 될 때 오는 듯 싶다. 큰 아빠도 할아버지가 되자 바보 되는 법을 배우신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이번 명절엔 레스토랑에서 밥 사먹고 허한 얼굴로 TV 보고 있을 아빠를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 좋다. 아빠, 서로 지지고 볶고 참아줘봤자 이제 십년쯤 될까. 아빠는 사회의 잣대로 친가 식구들이 훨씬 자랑스러울지 모르겠으나,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는 밀도를 봤을 땐 백년쯤 노력해도 외가 식구들 따라가려면 멀었어. 더 제대로 어른 되는 모습 보여주세요. 철없이 싸우고들 그러시지 말고. 한편으론 두서 없이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당신처럼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사회인으로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고 다치고 기도하고 성장하는 이 모든 ‘살아 있는’ 과정이 참 감사한 일이다. 아주 새삼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