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세요 선배님

오늘 젊은 스타트업 사장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지인 중에 벤처 창업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역시 젊디 젊은 창업자가 있었다. 창업자는 베타버전 웹서비스를 들고 투자를 받기 위해 VC를 만났고, 그의 아이디어는 VC를 거쳐 이름 대면 알만한 누군가에게 갔다. 그 누군가는 서비스를 베껴서 내놓은 걸로 모자라, 그 창업자를 불러내 비즈니스란 게 원래 그런 거다라고 한 마디까지 잊지 않고 해 주셨단다. 이건 뭐 깡패도 아니고!! 뭘 그런 걸로 흥분하고 그러니 니가 순진한거다 하실 수도 있겠으나 쉔네 오늘 좀 흥분했다. 정작 이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쓰고 있는 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는데. 임금님 귀는 당나기 귀라서. 쏘리. ㅋ
왜 이런 종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끊임없이 나오는지, 유독 오늘은 더 좌절스럽다. 작은 조직의 좋은 아이디어나 BM이 있으면 그걸 사는 게 정당하지, 왜 큰 조직의 힘빨로 밀어붙이거나, 몇 년 더 살아봤고 업계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 아이디어를 베끼고 질알이신가, 질알이. 간만에 들어가보니 베껴서 내놓은 서비스가 거의 죽어가는 건 쌤통이다만, 정 인생 정당치 않게 살고 싶으면 얌전히라도 베껴주시던가!! 희망 가득한 미래를 그리기에도 아까운 젊은 친구를 불러내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냐는 거지.
물론, 하늘 아래 완전 새롭기만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아이디어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실현하느냐, 얼마나 잘 monetize하느냐에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쉽게 카피될 수 있는지 걱정하지 않은 그 어린 창업자가 순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이런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먹이사슬의 상단부터 하단까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게 짜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누군가는 시도하고 상처입고 실망하지만, 결국 살아 남을 것이다. 대기업이 미투 서비스를 내놓고 불공정 경쟁구도를 짜고,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어디 한 번 뛰어보시지, 하고 팔짱끼고 말하는 데도, 그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골을 넣어 보이는 이가 나올 거다. 그러나 이 축구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걸 안다면, 이를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 건 현상의 관찰이 아니다. 기울어져 있다고 투덜거리고 덩치 큰 놈을 손가락질 하고 욕해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으니.

 

비단 IT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있어서, 이런 류의 문제는 너무나 익숙하다. 영화도, 음악도, 작은 것들은 죽어가고 줄어만 간다. 종의 다양성은 관찰하기 힘들고, 따라서 계가 건강하다고 보기 힘들다. 애초에 너무 계가 작아서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내가 노는 물을 더 넓은 계로 바꿔서 생각하는 것도 답이겠지.

어쨌든. 그냥 봤을 땐 사람 참 좋아 보이던 그 분, 얼마나 잘 되시는지 오나전 주먹 꽉 쥐고 관찰해 드릴게요. 건승을 빕니다. 후훗. 🙂

한성은
한성은
데이터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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